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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남자라면 한 번쯤 꿈꾸는 픽업트럭, 쉐보레 실버라도 시승기

[오토트리뷴=양봉수 기자] 국내에 단 3대 밖에 없고, 미국에서도 보기 힘든 특별한 픽업트럭을 시승했다. 쉐보레가 지난해 말부터 국내에 콜로라도를 공식 판매하고 있지만, 실버라도는 콜로라도보다 큰 모델이다. 콜로라도는 미국에서 중형으로 분류되는데, 실버라도는 대형도 아니고, 풀 사이즈다. 그래서 크기도 훨씬 크다. 전장만 무려 5.9미터에 육박하고, 전고는 2미터, 심지어 전폭은 사이드미러를 제외해도 2미터를 훌쩍 넘는 거대 트럭이다.

 


미국에서는 1,500급, 2,500급, 3,500급 등으로 체급이 나뉘는데, 사실상 승용으로 타는 건 1,500급이 마지노선이다. 그래서 포드 F-150이나 쉐보레 실버라도, 닷지 램 등의 판매량은 1,500급이 가장 높다. 2,500급부터는 해비 듀티의 약자를 따서 모델명 뒤에 HD가 붙는데, 이건 대형 트레일러나 보트를 견인하거나 상용차로 쓰인다.

 


실버라도가 속한 1,500급에서도 형태를 기준으로 세부적으로는 구분이 복잡하다. 현대 포터만 하더라도 막상 구입하려면 가격표가 복잡한 것처럼 실버라도 역시 마찬가지다. 탑승공간의 형태에 따라 싱글캡, 더블캡, 크루캡으로 나뉜다. 더블캡도 문짝은 총 4개지만, 크루캡보다 탑승공간이 좁고, 크루캡은 탑승공간이 미니밴 처럼 아주 넓다. 또 적재공간은 숏베드와 롱베드, 스탠다드 등이 있다. 전장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크루캡은 숏베드와 스탠다드까지만 선택 가능하고, 롱베드는 주로 싱글캡이나 더블캡에서 적용된다. 참고로 시승차는 크루캡에 숏베드 모델이다.

 


트림별로 보면 실버라도는 하이컨트리, LTZ, LT 트레일 보스, RST, LT, 커스텀 트레일 보스, 커스텀, 워크 트럭 등 총 8가지가 있다. 이 중 하이컨트리와 LTZ가 로드형 최고급 트림이고, LT 트레일 보스는 오프로드 특화형 최고급 트림이다. RST와 LT는 일반 트림, 커스텀 트레일 보스, 커스텀, 워크 트럭은 비교적 하위 트림으로 구분된다. 파워트레인도 상위 트림에서는 5.3리터 V8 엔진과 8단 자동이 기본이지만, 커스텀이나 워크 트럭은 2.7리터 가솔린 터보나 4.3리터 V6 엔진에 6단 자동이 기본이다.
 

 
LT 트레일 보스는 오프로드 특화 모델이기 때문에 란초 서스펜션이 장착되며, 공장 출고부터 기본모델 대비 2인치 더 높게 세팅된다. 또 경사로 보조, 자동 디퍼런셜 략, 2단 트렌스퍼 케이스, 메탈 언더커버, 고성능 에어 필더, AT 타이어 등이 기본이며, 시승차에 포함된 사이드 스탭이나 적재함 롤바 등은 모두 추가 사양이다.

 


카마로의 디자인에서 영향을 받아 투 톤 컬러가 적용되었는데, 마치 영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하며, 로봇으로 변신도 할 것 같다. 또 정면에서 바라보면 높게 솟은 후드와 딱 벌어진 어깨는 압박감이 최고다. LED 헤드램프는 마치 로봇의 눈과 같고, 투박한 그릴도 제대로다. 하지만 방향지시등에는 LED가 아닌 일반 전구가 사용돼 분위기를 확 깨 버리고, 클락션도 예상보다(?) 너무 평범하다.

 


비례감 역시 예술인데, 후드와 탑승공간, 적재함이 매우 적절하게 나뉘어 있고, 아주 이상적이다. 사이드스탭과 롤바는 이 비례를 더욱 멋지게 빛내 주며, 실제 승하차 시에도 유용하다. 18인치 타이어는 다소 작아 보이지만, 차량의 콘셉트를 고려했을 때는 충분하고, AT타이어와도 잘 어울린다. 사이드미러는 일반 픽업과 다르게 세로로 긴 형태가 아니라, 가로로 긴 모습이다. 게다가 광각도 아니어서 의외로 사각지대가 꽤 있다.

 


후면에서도 헤드램프처럼 테일램프에 LED를 사용해 모양을 잡았고, 디자인 자체도 썩 괜찮다. 적재함 중앙으로는 쉐보레가 음각으로 새겨져 다소 밋밋해서, SNS를 찾아보니 해외 오너들은 이 부분에 래핑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적재함은 한 손가락으로 개폐가 가능할 정도로 가볍게 작동되고, 후방 작업등과 적재함 내부 조명 등으로 작업 편의성을 높였고, 발판과 머플러 팁이 포함된 범퍼의 품질도 콜로라도 대비 훨씬 우수하다.

 


실내는 외관에 비해서는 단조롭다. 모든 픽업트럭이 이런 실내 디자인을 갖는 건 아니지만, 포드와 쉐보레의 픽업트럭들은 이렇게 직관적이고, 단순한 형태다. 트럭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겠지만, 승용차들과 비교했을 때는 상당히 투박해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실내가 넓어서 그렇지 터치스크린도 나름 8인치고, 수납공간도 아주 많다. 각 버튼들의 조작성도 매우 뛰어나고, 조작 시 만족감도 수준급이다.

 


시트에 앉아 있으면 시야가 너무 높아서 도로를 지배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시트는 높이 조절 폭도 꽤 되고, 운전석은 전동식이며, 요추 받침 기능도 있다. 또 뒷좌석은 웬만한 SUV보다 2열이 넓고, 성인 4명이 앉아도 좁지 않을 정도다. 또한 등받이 각도도 렉스턴 스포츠 칸이나 콜로라도 대비 편하고, 시트 뒷면에는 비밀 수납공간도 옵션으로 추가되어 있다. 시트 바닥을 들어 올리면 중형 SUV 만큼 넓은 적재공간을 확보할 수 있어 1열만 사용할 때는 2열에 중요한 짐들을 적재할 수 있게 했다.

 


아무리 미국차들이 실용주의를 추구하고, 투박하다고 하지만, 진짜 엔진룸 마감은 최악이다. 특히 가장자리는 마감을 아예 하지도 않았다. 국내에서 생산하는 3천만 원짜리 말리부보다도 못한 마감이다. 그래도 엔진은 5.3리터 V8이며, 기본 8단 자동에서 10단 자동으로 바꿨다. 그리고 5.3리터 V8 엔진은 다이내믹과 액티브 효율관리 두 가지가 있는데, 시승차는 5.3 V8 다이내믹이고, 5.3 V8 액티브에는 6단이 맞물린다. 5.3 V8 액티브는 워크트럭과 커스텀에 장착되는 엔진이기 때문에 배기량이 같다고 해서 같은 엔진은 아니다.

 


5.3리터 V8 DFM(다이내믹 효율 관리) 엔진은 최고출력 355마력에 최대토크 52.8kg.m을 발휘해서 일단 배기음부터가 다르다. 퍼포먼스 배기 시스템이 빠져 있어서 아주 시원한 배기음은 아니지만, 그래도 V8 엔진의 배기음은 과하지 않으면서 딱 기분 좋을 정도로 귀를 간지럽힌다. 칼럼 타입의 변속기가 조금 성가시긴 하지만, 일단 출발을 하면 변속기의 반응도 제법 재빠르다. 3~4천 rpm에서 배기음이 가장 좋기 때문에 가속 페달을 계속 밟으면 2.2톤의 중량을 웬만한 중형세단처럼 가뿐하게 밀어낸다.

 


속도가 올라가도 AT타이어에서 올라오는 노면 소음은 상당히 적고, 풍절음이나 정숙성에서는 웃음이 날 정도로 좋다. 엔진음과 배기음에 자꾸만 신경이 쓰여서 그럴 수도 있지만, 보스 오디오 역시 탑승객의 혼을 빼놓는 요소 중 하나다. 현대 쏘나타에도 보스 오디오가 장착되어 있고, 카오디오로도 익숙하게 접해왔던 보스 오디오지만, 실버라도와 보스 오디오의 조합은 게임 끝이다. 사운드의 선명도나 입체감, 풍부한 저음이 픽업트럭과 어우러지면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볼륨을 반만 올려도 시트가 울릴 정도로 저음을 온몸으로 때려 박는데, 클럽 그 자체다. 볼륨은 반 이상 올려보지도 못했을 정도로 출력이 훌륭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시 주행으로 돌아가서 씁쓸한 얘기부터 하자면 브레이크는 형편없다. 1,000km도 주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받았기 때문에 그런지 모르겠지만,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나중에 반납할 때는 그나마 적응돼서 나쁘지 않았으나, 초반에는 적응 시간이 필요했다. 서스펜션은 픽업트럭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비교적 딱딱해서 갑작스러운 차로 변경도 가능하고, 과속 방지턱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으면 난리가 날 정도다. 비포장길에서의 승차감도 괜찮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외로 너무 물렁한 세팅은 아니다.

 


고속도로에서는 차간거리나 차로이탈방지 보조까지 지원하지 않지만, 크루즈 컨트롤이 있어서 아쉬운 대로 연비 주행을 할 만하다. 이때 100km/h로 주행하면 rpm이 겨우 1,500 rpm에 불과하고, 120km/h까지는 2천 rpm 이하를 유지한다. 덕분에 고속도로 연비는 리터당 10km도 가능하다. 물론 작정하고 연비 주행을 하지 않으면서 장거리를 탄다면 휘발유 가득 주유 시 13만 원이 드는데, 이걸 하루 만에 다 쓰고도 모자른다. 시승하면서 장거리를 많이 탔더니 매일 13만 원씩 주유를 해야 했고, 연비도 5~7km/l를 유지했다. 막히는 구간의 시내 연비는 별 의미가 없긴 하지만, 3~4km/l를 기록했고, 정체가 심하지 않으면 시내나 국도 모두 5km/l 이상도 가능하며, 참고로 오토&스탑 기능이 있으나 활용하지 않았다. 이런 점들과 AT타이어, 공차중량, 배기량 등을 감안하면 5.3리터 V8 엔진 치고, 예상보다 연비는 훌륭한 편이다.

 


사륜구동 모델이지만, 평상시에는 후륜으로 주행한다. 그러나 차가 워낙 무겁기 때문인지 노면이 미끄러운 곳에서도 헛바퀴가 돌거나, 뒤뚱거리는 일은 느낄 수 없었다. 핸들링도 차의 크기에 비해서는 깔끔했고, 일반적인 대형 SUV와 비슷한 수준으로 특별히 이질감이 없다. 그러나 방심하면 안 되는 것이 차가 워낙 커서 차로를 가득 채우기 때문에 옆 차로에서도 버스나 큰 트럭이 주행하고 있으면, 양손으로 핸들을 꼬옥 잡고, 주행해야 한다.

 


가장 많이 궁금해하는 것이 바로 주차다. 주행은 그럭저럭 어떻게 한다고 해도, 이 좁은 나라에서 주차는 어떻게 해결할까. 너무 오래된 아파트나 건물만 아니라면 대부분의 지하 주차장 진입도 가능하다. 물론 지상에 주차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지상 주차장을 이용하는 편이 여러모로 좋다. 개인적으로는 지방에서 거주하기 때문에 주차에 대해서는 큰 불편함이 없었고, 좁은 주차장은 아예 진입 자체를 안 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큰 차를 타려면 그 정도 불편함은 오히려 즐기면서 구입해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싶다.

 


되게 불편한 차다. 너무 커서 운전도 주차도 힘들다. 그리고 국산차처럼 통풍시트가 있거나, TPEG이 되는 내비게이션이 있다던가, 첨단 사양이 가득하지도 않다. 심지어 요즘 그 흔하다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마저도 없다. 사양만 따지고, 편하고 싶다면 오히려 쌍용 렉스턴 스포츠가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왜 실버라도가 국산 픽업트럭보다 나은 지 구구절절 설명이 필요 없는 것처럼 실버라도 Z71 트레일보스는 그 자체가 매력적이었다.

 

bbongs142@autotribu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