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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부분변경의 좋은 예, 2020년형 볼보 XC90 시승기

[오토트리뷴=양봉수 기자] 볼보 XC90이 최근에 2020년형 모델로 출시됐다. 자동차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별차이가 없을 정도로 기존 모델과 비슷하다. 사실상 퇴근 후 집에 돌아온 내게 와이프가 “자기야, 나 뭐 달라진 거 없어?”라고 묻는 정도의 느낌과 별다르지 않다. 하지만 달라졌고, 대부분은 그대로라서 더 좋다.

 


자동차는 보통 6~7년 정도의 신차 출시주기를 갖는다. 그 사이 한 번씩 부분변경을 거치며, 상품성을 보완하고, 경쟁모델에 대응하는 역할을 해내기도 한다. 그런데 볼보 XC90의 디자인이 대부분 그대로라는 것은 볼보자동차의 자신감이 묻어난 게 아닌가 싶다. 디자인 철학도 뚜렷하고, 정체성을 완전히 잡았기 때문에 굳이 바꿀 필요가 없지 않았던 게 아닐까? 다만 기존에 조금 아쉬웠던 크롬 장식들을 라디에이터 그릴과 범퍼 등에 추가했을 뿐이다. 그릴 내부도 더 입체적으로 변경됐는데, 개인적으로는 이제서야 디자인이 완성된 것 같아서 딱 좋다. 프리미엄 대형 SUV 그릴에 크롬이 없었던 것은 물 조절에 실패한 라면처럼 싱거웠다.

 


볼보의 앰블럼인 아이언마크도 디자인이 변경됐다. 기존 대비 간결한 모습이 썩 마음에 든다. 어차피 기존에도 어라운드 뷰 카메라가 앰블럼 하단에 장착되면서 앰블럼이 훼손되는 느낌이었는데, 오히려 이번 디자인은 이런 장비들도 자연스럽게 품었다. 이외에는 휠 디자인이 더 세련되면서도 강인한 느낌이 들게 바뀌었다. 볼보자동차 관계자에 따르면 “특히 모멘텀 트림은 이제 외관만 봐서는 쉽게 구분이 안될 정도로 품질이 높아졌다”고 한다. 물론 시승차는 인스크립션이라 확인이 불가하지만.

 


실내는 그대로다. 그런데 그대로라 너무 다행이다. 같은 날 S60을 시승한 김예준 기자도 다른 시승기에 이미 썼지만, 독일차에 없는 따뜻한 감성이 있어서 사실 부분변경에서도 건드리지 않았으면 했다. 가죽과 알루미늄, 우레탄, 리얼 우드 등을 적절히 활용했고, 모든 마감재가 아주 잘 어우러진다. 처음 XC90을 시승했을 때는 세로형 터치스크린에 버튼들이 모두 삽입돼 어색하고 불편했는데, 이제 몇 번 타봤다고 익숙해서 크게 불편하지도 않다. 게다가 디스플레이형 계기반이나 9인치 터치스크린은 첨단 사양이 가득한 요즘 차라는 걸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듯해서 괜히 더 멋지고, 내비게이션도 쓸만하다.

 


현 세대 XC90이 처음 출시되었던 시기에는 결혼을 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아이까지 있다. 당연히 차를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달라졌고, 오로지 아내와 아이 중심으로 보게 된다. 특히 이런 패밀리 SUV라면 더더욱 그렇다. 가장 마음에 든 건 역시 전세계 유일하게 볼보 XC90에만 적용되는 부스터 시트다. 카시트를 장착하거나 태우기 애매한 4~7살 정도의 아이를 안전하게 태우기에 적당하다. 부스터 시트가 시트 중앙에 있으니, 센터터널 때문에 바닥면이 솟아 있어 발이 공중에 뜨지도 않고, 놀랍도록 적절하다. 높은 센터터널은 보통 단점인데, XC90은 이걸 또 장점으로 승화시키다니.

3열에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들은 충분히 탑승할 만하지만, 성인은 역시 무리다. 그래도 3열이 있다는 건 트렁크가 그만큼 넓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마트에 장보러 다니거나, 레저 활동을 즐기기에도 좋은 크기와 구조다.

 


D5 디젤은 2리터 디젤엔진으로 최고출력 235마력, 최대토크 48.9kg.m을 발휘한다. 2리터 4기통 엔진 치고는 성능이 꽤 괜찮은 편이다. 실제로 8단 자동변속기와 사륜구동이 맞물리면서 가속성능도 답답하지 않다. 하지만 빠른 것도 아니라서 체감되는 가속성능만 놓고 보면 현대 싼타페 2.2 디젤과 비슷할 것 같다. 연비 체크는 미처 하지 못했으나, 서울에서 원주까지 왕복을 하고, 시승도 하고, 경유가 남았으니, 적어도 기름 먹는 하마는 아니다.

 


덩치가 크기 때문에 브레이크의 반응이 즉각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와인딩 코스에서는 허둥거림 없이 잽싸고, 칼같은 움직임으로 탑승자들을 놀라게 했다. 분명히 패밀리 SUV이지만, 섀시 강성이나 서스펜션 세팅은 굉장히 깔끔하다. 핸들링 감각도 좋은데, 그렇다고 해서 독일차처럼 묵직한 감성은 기대하기 힘들다.

 


지금의 볼보 XC90이 처음 출시되었을 때,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비난과 비판이 쏟아졌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볼보자동차코리아가 물량을 공급하기 힘들 정도로 인기를 끌었고, 그 인기는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에서 지속되고 있다. 게다가 최근 출시된 경쟁모델이나 대형 SUV들의 가격을 보면 XC90의 가격은 상대적으로 착해 보이기까지 한다. 안전이야 의심의 여지가 없는 볼보이고, 디자인, 옵션, 성능 모든 것을 갖췄으니, 맛집에 웨이팅 줄이 길게 늘어선 것처럼 앞으로도 출고 적체는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다.

그나저나 가을 날, 바워스 앤 윌킨스의 19개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은 너무 감성적이다.

 

bbongs142@autotribu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