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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이 시대의 천연기념물, 링컨 노틸러스 시승기

[오토트리뷴=양봉수 기자] 꼬박 3년 만에 다시 만났다. 도로에서는 이따금씩 마주하기도 했지만, 시승을 위해 다시 만나기까지는 3년이 걸렸다. 3년 만에 다시 만난 MKX는 생김새만 바뀐 게 아니라, 이름도 노틸러스로 바뀌었다. 노틸러스는 19세기 소설가 쥘 베른의 작품 해저 2만리에 나오는 잠수함 이름이자, 라틴어로는 탐험을 뜻하는 단어다. 물론 브랜드에서는 더 깊은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지만, 링컨의 의지와 여정 정도로 해석하면 이해가 쉽겠다.

 


노틸러스는 3년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 봐도 제원상 수치에 비해서 실제 모습이 훨씬 더 샤프하다. 제원상으로는 현대 싼타페보다 55mm나 길고, 팰리세이드와 맞먹는 크기다. 그렇지만 실물로 봐서는 그렇게 크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데, 바로 D필러 디자인 때문이다. 포르쉐 마칸처럼 후면 유리를 바짝 눕혀서 스포티한 디자인을 추구했기 때문에 후면 유리를 바짝 세운 기아 쏘렌토나 현대 싼타페에 비하면 다소 작아 보이기도 한다.

 


새로운 링컨 시그니처 그릴과 패밀리룩이 적용되면서 전면 디자인은 완전히 다른 차가 됐다. 개인적으로는 기존의 디자인도 마음에 들었지만, 새로운 패밀리룩도 시대에 맞게 적절한 변화를 이뤄냈다는 점에 있어서 긍정적이다. 특히 라디에이터 그릴이나, 헤드램프, 범퍼 하단 장식 등이 모두 더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잘 담아냈다. 후면 유리의 각도만큼이나 거대한 20인치 휠도 역동적으로 디자인됐고, 테일램프는 기존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지만, 완성도를 높이는데 집중했다.

 


노틸러스라는 모델명에 걸맞게 오묘한 외장 색상은 사진으로는 정확히 표현하기 힘들었다. 너무 진하지도, 흐리지도 않은 경계에서 볼수록 고급스러운 느낌이 노틸러스 그 자체다. 후드 위의 칼주름이나, 사이드미러, A필러 하단의 노틸러스 레터링까지 모든 게 인상적이었지만, 운전석 방향의 사이드미러는 광각이 아니라는 점이 옥에 티였다.

 


아무래도 페이스리프트 모델이다 보니, 실내 디자인이 거의 그대로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특히 12.3인치 풀 컬러 디스플레이는 더욱 간결하면서도 많은 정보를 표시하고, 이와 함께 터치스크린에도 반영된 한글화는 사이다가 따로 없다. 폰트가 깨지는 일도 없고, 이 정도면 누구나 불편함 없이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직관성까지 갖췄다. 새로운 스티어링 휠 디자인은 보기에도 좋지만, 리모컨 조작도 아주 직관적이어서 두말하면 잔소리다.

 


새삼스럽게 놀란 건 실내 마감재다. 요즘은 원가절감을 이유로 프리미엄 브랜드도 우레탄 사용 비중을 늘리고, 대중 브랜드는 플라스틱 비중을 늘리는 추세다. 그러나 노틸러스는 여전히 가죽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우레탄 소재가 실내에서 찾아보기 힘들고, 대부분 가죽이다. 대시보드, 도어 구분 없이 고급스럽게 꾸몄다. 이렇게 비싼 소재를 사용하고도 팍팍 티를 내지 못하니, 보는 사람이 더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래도 요즘 이렇게 수수한 브랜드가 있다니, 그게 매력인가 보다.

 


19개의 레벨 울티마 오디오 시스템은 여전히 감동적이다. 개인적으로는 음악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날씨와 기분에 영향을 받아 듣는 편이다. 그래서 힙합, 댄스, 트로트, 재즈, 클래식, 뉴에이지 심지어는 국악까지도 듣는다. 이것저것 테스트 삼아 들어보니 클래식과 재즈는 매우 훌륭했고, 트로트도 의외로 뽕필(?)이 솟구쳤다. 힙합은 다른 장르에 비해서 비교적 무난하긴 했는데, 그래도 역시 최고는 최고였다. 무엇보다 소음 차단이 확실해서 주행 중에 노면 소음이나 풍절음 때문에 볼륨을 높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100점 만점에 120점이다. 어떻게 이렇게 소음 대책을 잘 세웠지?

 


2.7리터 가솔린 트윈-터보 엔진은 최고출력 333마력을 발휘한다. 최대토크는 무려 54.7kg.m에 달하고, 8단 자동변속기가 맞물린다. 최근까지 타던 차량이 333마력이었기 때문에 이 출력이 얼마나 대단하고, 감동적인지 익히 알고 있다. 고성능 차들 만큼 빠르지는 않지만, 내가 가속을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고, 크게 부족함 없이 달릴 수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매우 선호하는 수치다.

 


하지만 노틸러스는 세단이나 쿠페와 달리 SUV라는 본연의 방향성에 충실하다. 빠르기보다는 후반 가속까지도 꾸준하다. 서스펜션이 받쳐주는 만큼 고속에서의 안정성도 훌륭하다. 주행 중에 운전석, 조수석, 뒷좌석 모두 앉아봤는데, 속도계가 꺾여도 승차감이 너무 안정적이다. 또한 시트의 포근함은 이만한 패밀리카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게 하며, 과거의 미국차처럼 경박하거나, 불안하게 출렁이지는 않는다. 유럽차처럼 단단한 성향이 강한 차가 싫고, 승차감이 조금 부드럽고 편했으면 하는 이들에게는 최적화된 세팅이다.

 


6단에서 8단 자동변속기로 바뀌면서 복합연비가 14% 향상된 8.7km/l를 기록한다. 이게 공식 수치다. 하지만 실제로 시승해보니 연비는 운전습관에 따라 고속에서는 복합연비보다 조금 더 높게 나오기도 하고, 시내에서는 조금 더 낮게 측정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시내 주행이 잦아지면서 7km/l 이하까지 떨어지기도 했는데, 그래도 크기나 성능, 편안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나쁘지 않은 편이다.

 


새롭게 추가된 첨단 보조 사양인 코-파일럿 360도 사용해봤다. 일단 스티어링 휠에서 매우 간단하게 조작할 수 있어서 헤매지도 않고, 원래 내 차였던 것처럼 바로 작동시켰다. 스티어링 휠도 잘 돌리고, 차간거리 유지 등의 기능이 전반적으로 매끄러워서 한번 켜 두면 끄기가 싫다. 여러모로 첨단 사양들은 완성도가 높은 편이어서 만족스러웠다.

 


3년 전에도 좋았고, 지금도 좋다. 하지만 지금은 결혼을 했고, 아기가 생겨서 노틸러스가 더 좋아졌다. 나도 이제는 가족을 챙길 때가 되었으니. 실내 디자인이 외관만큼 드라마틱 하지 않고, 터치스크린 크기가 조금 더 커지지 않은 아쉬움도 있고, 몇몇 가지 불만도 있긴 하다. 그런데 이차 너무 괜찮다. 원가절감을 한 흔적이 별로 없다. 무식하게 마감재를 뒤덮어 소음을 줄였고, 실내에는 가죽으로 도배를 했다. 심지어 오디오 시스템도 좋지만, 볼륨을 조절하는 다이얼의 느낌까지도 수준급이다. 요즘 이렇게 정직하게 만든 차를 만나기 힘든데, 천연기념물 같았고, 여러모로 반가웠다.


가격도 유럽 브랜드 차량 대비 합리적인 5~6천만 원대에 책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 체급에서는 깡패가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조금 더 여유로운 크기와 실용적인 구성을 원한다면 포드 익스플로러, 크기보다는 고급스러운 승차감과 사양 등을 누리고 싶다면 링컨 노틸러스가 답이다. 더군다나 요즘은 반일감정 때문에 유럽차가 아니면 구입할 만한 수입 SUV도 없는 상황이니, 이번 일을 계기로 노틸러스의 진면목을 많은 이들이 경험하게 될지도 궁금해진다.

 

bbongs142@autotribu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