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트리뷴=김준하 기자] 대한민국 수입차 업계에서 가장 핫한 브랜드를 꼽으라면 볼보를 들 수 있다. 새로운 디자인 콘셉트와 다운사이징 엔진, 감성적인 디테일을 잘 살려내 인기를 모으는 중이다. 예약을 해도 수개월은 기본으로 기다려야 한다는 볼보 XC 40을 시승했다.
전면부는 패밀리룩을 충실히 따랐다. 특유의 ‘T’자 주간주행등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볼보임을 알아차리게 하는 특징이다. LED 헤드램프는 디자인과 기능성을 살려 야간 주행에도 시인성이 뛰어나다. 특히 스티어링 휠 연동 기능에 코너링 램프가 함께 작동해 캄캄한 밤길에도 선명한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
라디에이터 그릴은 라인업에 따라 모양이 다르다. 시승차는 R-디자인 트림으로, 유광 블랙 그릴이 적용돼 스포티하다. 다른 트림은 그레이 또는 크롬으로 된 수직 라인이 사용돼 인상이 달라진다.
측면은 뒤로 갈수록 루프라인이 높아져 정통 SUV 다운 당당한 모습을 구현한다. 2열 윈도우 라인이 급격히 경사를 이뤄, 전장이 짧고 다부져 보이는 효과가 있다. 이런 특유의 디자인으로 인해 2열 탑승객의 시야는 다소 줄어들게 된다. R-디자인 모델은 전용 19인치 휠을 장착한다. 무광 블랙 투톤 컬러로 디자인과 색상 모두 고급스럽고, 스포티한 디자인 콘셉트를 잘 적용했다.
후면부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LED 테일램프가 루프 스포일러까지 올라가 시인성이 높고, 차고를 높아 보이게 만든다. 트렁크 가운데는 볼보 레터링이 삽입되는데, 음각으로 한 번 더 강조해 밋밋함을 덜어냈다. 범퍼에 장착된 후방 안개등은 국산차에는 잘 적용되지 않는 요소다. 범퍼 하단은 쿼드 타입 머플러 팁을 사용한다.
볼보 XC 40 R-디자인의 차 문을 열면 화사한 색상이 가장 눈에 먼저 들어온다. 볼보에서는 라바(lava) 컬러라고 부르는데, 실제로 보면 용암처럼 붉은 느낌보다는 오렌지색에 가깝다. 흔히 부직포라고 하는 재질이 사용됐는데, 손으로 만져보면 질감이 거칠어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손과 발이 자주 닿는 부분들에 적용돼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보풀이 생기지 않을까 염려도 된다.
센터패시아의 9인치 디스플레이는 각종 차량 기능 버튼이 일목 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디스플레이 크기는 태블릿 PC 정도의 사이즈라고 생각하면 된다. 기능 버튼들은 한글화가 잘 돼 있는데, 일부 생소한 명칭은 어떤 기능인지 설명이 추가돼 사용자에 대한 배려가 느껴진다. 공조장치도 디스플레이로 조작한다. 자주 사용하는 만큼 화면 하단에 상시 표시되는데, 스마트폰처럼 터치 인식률이 높고 반응이 즉각적이다. 자동차 기능 버튼은 물리 버튼이어야 한다는 게 평소 생각이었는데, 사용해보니 터치 방식도 괜찮겠다고 바뀔 정도로 잘 만들어졌다. 물론 처음에는 약간 어색할 수 있어서, 익숙해지는데 다소 시간이 필요하다.
디스플레이 아래에는 비상등, 윈도우 열선, 오디오 조작, 그리고 드라이브 모드 변경 버튼이 있다. 비상등 스위치는 운전자 가까이 위치해 있어 사용이 편리하다. 하단에 위치한 무선 충전 장치는 큰 사이즈의 스마트폰을 놓아도 넉넉할 정도이고, 주변에 작은 수납공간도 활용할 수 있다.
전자식 변속 스위치는 사용성이 매우 뛰어나다. 손에 쥐었을 때의 감촉이 좋은 것은 물론 한 손에 들어오는 크기라 자꾸만 손이 가게 만든다. 변속기, 전자식 주차브레이크와 같은 버튼류의 크기를 최소화해 깔끔하고 컵홀더와 재떨이, 휴지통과 같은 수납공간은 넉넉히 배치했다.
12.3인치 디스플레이 계기반은 디지털 방식이다. 주행모드에 따라 그래픽이 변화하는 것은 물론, 차량 내 탑승 상황과 안전벨트 착용 여부까지 그래픽으로 묘사한다. 계기반에는 내비게이션 화면을 띄울 수도 있는데, 좌우의 속도계와 회전계 크기가 작아지면서 가운데 표시 공간을 넓혀준다. 모든 운전 정보는 계기반에 집중 표시된다. 내비게이션은 물론 현재 도로의 제한 속도까지 확인할 수 있어, 주행할 때 시야를 굳이 센터패시아로 돌리지 않아도 된다.
스티어링 휠 왼쪽은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파일럿 어시스트 기능 버튼이 장착된다. 두 기능의 주된 차이는 파일럿 어시스트는 크루즈 컨트롤 기능에 더해, 차선 인식에 따른 조향 기능이 제공된다는 점이다. 스티어링 휠 우측은 오디오 관련 버튼이 자리 잡는다. 뒤편의 패들시프트는 D 모드에서도 누르기만 하면 작동한다. 금속과 고무 재질을 적절히 사용해 손에 잡는 감촉이 좋다.
볼보의 시트는 편안한 것으로 유명하다. 전동식으로 작동하며 허벅지와 요추 받침 기능까지 제공해 세밀한 조정이 가능한 것이 장점이다. 몸이 닿는 부분은 누벅 직물을, 나머지 부분은 나파 가죽을 사용했다. 1열과 2열 모두 헤드룸과 레그룸은 넉넉한 편이다. 2열은 시트가 직각에 가까운 형태로 곧게 서 있고, 각도 조절은 되지 않지만 공간이 여유롭다. 바닥 센터 터널 부분이 높게 솟아올라 5인이 장시간 타기는 다소 무리가 있다. 2열 도어와 시트 사이 자투리 공간에도 작은 수납공간을 마련해 만족감을 준다.
도어 윈도우 내부를 두꺼운 플라스틱으로 덧대 꼼꼼히 마감한 것은 매우 인상적이다. 프리미엄 브랜드 중에서도 상위 모델들에서나 적용하는 사양인데, 정말 철저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마감 품질도 우수하다. 일반 차량들의 경우는 차체 금속 틀로 마감 처리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전동식 트렁크를 열면, 넉넉한 적재 공간이 펼쳐진다. 최근 출시되는 SUV 중에는 승용차보다도 좁은 트렁크 공간을 가진 모델도 간혹 있는데, XC 40의 적재 공간은 말 그대로 넓다. 필요에 따라 하단 커버를 세우거나 접어서 더 공간을 확장할 수도 있다. 바닥면이 트렁크 입구에서부터 평평한 구조로 돼 있어, 각종 화물을 적재하기에도 편리하다. 흔히 볼보 모델을 가리켜 스칸디나비안 감성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깔끔한 디자인도 매력적이지만 사소한 부분까지 사용자를 배려한 것은 많은 자동차 제조사들이 본받아야 할 부분이다.
XC 40의 정식 모델 명칭은 XC40 T4다. 2리터 가솔린 터보 엔진이 장착돼 최고출력 190마력, 최대토크 30.6kg.m의 힘을 발휘하며 8단 자동변속기가 맞물린다. 상시 사륜구동 시스템을 전 트림에 기본으로 적용한다. 정차 중이나 주행 중일 때, 생각보다는 엔진음이 실내로 많이 유입된다. 디젤 엔진처럼 진동이 있거나 불쾌한 느낌은 아니고, 주행 상황에 따라서는 소음이 아닌 사운드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다. 엔진의 매끄러운 회전 질감과 부드러운 승차감은 가솔린 SUV의 장점 가운데 하나다.
XC 40은 전장X전폭X전고X휠베이스가 각각 4,424X1,875X1,640X2,702mm에 달해 투싼이나 스포티지와 비슷한 크기에 1.7톤의 무게를 갖고 있다. 차체 크기나 공차중량을 생각하면 엔진 성능은 평범한 편이지만, 최대토크가 1,400rpm에서부터 발휘돼 시종일관 경쾌한 주행이 가능하다. 주행모드를 스포츠로 바꾸면, 출발할 때부터 제법 맹렬한 기세로 움직인다. 고속 영역에 다다를 때 한순간 주춤하는 경향이 있는데, 실생활에서는 충분히 스포티한 주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적어도 XC 40의 달리기 성능에 대해서는 논란이 될 여지가 없다.
엔진음은 약간 유입되지만 풍절음이나 바닥 소음은 잘 차단된다. 스티어링 휠의 반응은 직관적이고, 코너를 날카롭게 파고드는 실력도 우수하다. 운전자가 의도한 대로 즉각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차체에 대한 신뢰감이 높게 쌓인다. XC 40에 사용된 피렐리 P 제로 타이어는 주행성능과 접지력이 우수한 스포츠 타이어다. 차체 서스펜션의 구성도 좋지만, 고성능 타이어를 장착한 것도 높은 주행성능의 원인이다. 경쾌한 달리기 실력만큼이나 제동 반응도 재빠르고 탄탄하다. 여러 차례 시험을 해도 쉽게 피로해지지 않는 성능을 갖췄다.
이번 시승에서는 고속도로와 시내 운전을 할 때, 볼보의 주행 보조 시스템 - 파일럿 어시스트 기능을 자주 사용했다. 계기반 하단의 스티어링 휠 아이콘이 녹색으로 바뀌면, 이 기능이 활성화됐다는 뜻이다. 선행 차량과의 거리와 제한 속도를 설정하면, 스스로 가속과 제동, 조향을 한다. 다양한 상태의 노면에서 이 기능을 테스트했는데, 전반적인 인식률은 높은 편이다. 다만, 오래된 국도를 주행할 때나 장대비가 내리는 상황에서는 인식이 안 되는 경우도 있었다.
주행 보조 시스템은 그동안 시승했던 다른 모델들과 비교해 보면, 아직까지는 볼보의 것이 가장 완성도 높게 느껴진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제동할 때의 세팅이다. 다른 모델들은 강한 제동으로 인해 이질감이 느껴지고 심지어 멀미도 했지만, 볼보는 아주 능숙한 운전자처럼 부드럽게 작동한다. 초보 운전자가 전방 차량에 가까이 다가가서야 급제동을 하는 것과 달리, 능숙한 운전자는 신호와 전방의 상황을 미리 주시해 여유롭게 제동을 하는 그런 느낌이다.
공인 복합연비는 10.3km/l로, 실주행에서도 비슷한 수치가 나타났다. 다소 막히는 시내 구간에서도 9km/l 수준이었고, 고속도로 주행을 할 때는 12~13km/l에 달해 가솔린 SUV에 알맞은 수준의 연비다.
도어 미러는 모양은 예쁜데, 시야가 좁아 아쉬움이 들었다. 복잡한 도로 상황이라면, 몸을 돌려 차가 오는지 확인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파노라마 선루프는 닫을 때 큰 진동이 느껴졌다. 단순한 소음 수준이 아니라 차체가 떨릴 정도의 둔탁한 진동이 느껴지는데, 시승차만의 문제점일 수도 있다.
XC 40에서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은 내비게이션이다. 그래픽이나 글씨체, 색상이 세련되지 못해 XC 40의 좋은 느낌을 퇴색시킨다. 수입차 브랜드이기 때문에 내비게이션 시스템의 도입과 국산화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볼보가 프리미엄 브랜드를 지향하는 만큼 반드시 보완되어야 할 부분이다.
볼보 XC 40을 시승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칭찬 일색이었다. 디자인에서부터 주행성능과 마감 품질에 이르기까지 불만을 표시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시승 초기엔 남들과 다른 방향으로, 이를테면 불만족스러운 점을 찾아 부각시켜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차 안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운전을 하면 할수록 더 매력적으로 다가와 처음 의도와는 달리 칭찬 일색의 시승기가 됐다. 소비자들의 안목이 누구보다 정확하다는 점을 실감했다.
XC 40은 모멘텀 4,620만 원, 인스크립션 5,080만 원이며, 시승차량인 R-디자인은 4,880만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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