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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기다렸던 벨로스터 N, 와인딩 로드 시승기

[오토트리뷴=김준하 기자] 본 기자는 현대자동차가 지난 7월 주최한 벨로스터 N 서킷 시승회에 참석하지 못했기에, 오매불망 벨로스터 N을 시승할 날만 기다려왔다. 서킷 주행을 마치고 돌아온 동료들의 상기된 얼굴이 잊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느리더라도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고, 드디어 벨로스터 N을 직접 체험하는 날이 다가왔다.



시승차량의 키를 받으면서 이렇게까지 가슴이 두근거린 적은 없었다. 벨로스터 N에 대한 기대감이 가장 컸고, 오랜만의 수동 차량 시승이라 걱정되는 부분도 조금 있었다. 그래서인지 브레이크 페달을 밟고 시동 버튼을 눌렀을 때 시동이 걸리지 않아 당황하기도 했다. 계기반의 안내 메시지를 읽고 나서야, 클러치 페달을 밟은 후 시동 버튼을 눌렀다.


나지막한 배기음이 실내를 파고 들어왔다. 실내에서는 공회전 상태에서 낮게 깔리는 배기음이 간간이 들려오는 정도였지만, 차량 외부에서는 제법 우렁찬 포효로 느껴진다. 충분히 공격적이고 자극적인 소리다. 클러치 답력이 생각보다는 강하지 않았지만, 일반 승용 차량의 수동변속기 모델과 비교하면 제법 다리에 강하게 힘을 실어야 한다. 클러치가 깊숙이 밟히는 타입이라 운전석 시트를 앞으로 바싹 당겨 조정했다.



걱정과 달리 시동을 꺼트리는 실수는 범하지 않았다. 그래도 클러치와 가속 페달을 적절히 조율하면서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상당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성공적인 출발(?)을 하고 약간 가속을 하자마자 곧바로 2단, 그리고 고단으로 연이어 변속을 했다. 엔진 반응이 상당히 빠른 편이기 때문에 곧바로 변속해야 하고, 이 발진 감각을 계속 유지하다 보니 초반부터 속도를 높이게 된다. 차량이 변속과 가속을 계속 부추기는 듯한 느낌이다. 어느 순간, 예상했던 것보다 속도계 바늘이 크게 위로 솟구쳐 올라, 법정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오른발에 힘을 빼야만 했다.

 

 

벨로스터 N의 주행 모드는 에코-노멀-스포츠가 마련되고, 스티어링 휠 우측에 별도로 자리 잡은 버튼을 누르면 N 모드로 변한다. 에코 모드를 제외한 전 모드에서 레브 매칭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데, 변속 충격을 완화해주고 수동변속기를 사용할 때 흔히 경험하는 힘 빠지는 현상 없이 줄곧 엔진의 힘을 휠로 전달한다. 레브 매칭 기능을 사용하지 않아도, 계기반 상단에는 변속 시점을 알려주는 표시창이 있어 지시에 따라 변속만 해도 좋은 가속감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차에 약간 익숙해진 이후에는 엔진 소리와 rpm 게이지에만 의지해 변속했다. 수동변속기가 각 단으로 이동하는 느낌이 좋다. 흔히 손맛이라고 표현하는 이 느낌은 실제 체험해보지 않고서는 제대로 그 느낌을 전달하기가 어렵다. 기어비가 촘촘한 데다 변속기 레버가 고정되는 깊이가 짧아 오른손은 줄곧 변속기 레버 위에 머무르게 된다. 6단 수동변속기는 1,3,5 단이 위에 그리고 2,4,6 단이 아래에 위치하는데, 5단에서 가끔씩 6단이 아닌 4단으로 변속하는 경우가 있었다. 계기반에 표시된 기어 상태를 눈으로 계속 주시해야만 했던 이유다.



에코 모드 일 때 비교적 조용했던 배기음은 노멀과 스포츠로 바꾸면 우렁찬 숨결을 내뱉는다. 의도적으로 가속 페달을 밟지 않아도, 변속 시점마다 적절히 배기음과 백프레셔(팝콘 소리)가 터져 나와 연신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이미 수차례 벨로스터 N 시승기가 공개된 바 있고, 오토트리뷴 기사 중에서도 서킷 주행 기사와 동영상이 공개됐었다. 그런 만큼, 이번 시승에서는 와인딩 구간을 집중적으로 주행하면서 벨로스터 N의 성능을 체험했다.



주행모드를 스포츠로 바꾸고, rpm이 위로 솟구쳐 오를 때마다 기어를 변속하면서 속도를 꾸준히 높여갔다. 전기차와 승용 세단, SUV 등을 수차례 테스트했던 도로였기 때문에 익숙한 길이었지만, 그동안 경험한 것과 다른 낯선 운전 감각 때문에 묘한 느낌이 들었다. 빠른 속도를 계속 유지하며 90도 가까운 굽이 길을 여러 차례 감아 돌아 나가도, 차체는 제자리를 좀처럼 벗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차선 안쪽을 깊이 파고들며, 더 빠른 속도를 내도 주행 궤적을 안정적으로 그려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붙었다.



주행모드에 따라 변화하는 전자식 서스펜션은 스포츠나 N 모드에 진입하면 보다 탄탄하게 변한다. 통행이 드문 외곽 도로이다 보니 도로 정비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불규칙한 노면의 크고 작은 충격이 그대로 전달됐다. 승차감만으로 논한다면 불편한 차겠지만, 주행성으로 평하자면 매우 안정적이고 지칠 줄 모르는 야생마 같은 느낌이다. 다소 무리하다시피 코너를 돌아나가는 경우를 제외하면, 타이어는 좀처럼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시승차는 퍼포먼스 패키지가 적용돼 19인치 휠에 피렐리 피제로 스포츠 타이어가 장착된다. 고성능인 만큼 가격도 비싼 타이어인데, 그만한 값어치를 충분히 해낸다.



벨로스터 N 퍼포먼스 패키지 적용 차량은 최고출력 275마력, 최대토크 36.1kg.m의 성능을 발휘한다. 최대토크가 1,450rpm부터 발현되기 때문에 사실상 가속 페달에 발만 올리면 오롯이 최상의 주행성능을 끌어낼 수 있다.  일부에서는 275마력을 가지고 고성능이라 표현하는 것은 오버스럽다고 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주행해보면 충분히 고성능차라고 부를만하다. 



시트는 버킷 타입이 적용됐다. 측면 지지력이 상당히 좋은 편이라 순정 상태 그대로 사용해도 별 무리가 없을 정도다. 다만 체구가 큰 사람의 경우 몸이 꽉 낀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측면 지지대까지 조정된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조금 남는다.



스티어링 휠은 가죽으로 돼 있고, 손잡이 부분은 천공으로 처리했다. 손에 감싸 쥐는 느낌이 좋고, 쉽게 미끈거리지 않아 주행 내내 양손에 착 달라붙는다. 사실 운전 내내 손에 약간 땀이 배어들어서, 손이 유난히 스티어링 휠에 달라붙는 감각을 느끼기도 했다.



벨로스터 N은 일반 모델에 비해 편의사양이 풍부하진 않다. 풀옵션 모델을 선택하더라도 HUD, 후측방 경고 장치나 차로 이탈 방지 경고 및 보조 장비 등은 장착할 수 없다. 그럼에도 전혀 아쉬움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철저히 달리는 재미를 느끼기 위해 만든 모델이고, 성능에 비해 상당히 합리적인 수준의 가격으로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격한 운전을 계속하다 보니 평균 연비는 4~5km/l 수준으로 급격히 떨어졌다. 연료 게이지도 눈에 띄게 줄어들어 저절로 연료비에 대한 걱정이 들었다. 와인딩 코스를 벗어나 고속도로를 주행할 때는 철저히 연비 위주로 주행을 했다. 에코 모드로 주행모드를 변경하고, 제한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크루즈 컨트롤도 적극 사용했다. 수동변속기 차량에서 크루즈 컨트롤을 이용하는 것은 처음이라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했는데, 자동변속기 차량과 동일하다. 다만 브레이크 페달뿐만 아니라 클러치 페달을 밟아도 기능이 해제된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



와인딩 구간에서와 달리, 고속도로에서는 벨로스터 N이 매우 얌전하게 느껴졌다. 생각보다 풍절음과 엔진음, 배기음이 거슬리지 않는다. 서울 도심에서 출퇴근용으로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겠지만, 지방에서는일상 용도로 주행해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연비 주행에 힘쓴 결과 평균 연비는 12.4km/l를 기록했다. 2리터 터보 엔진을 장착한 스포츠카의 연비로는 준수한 편이다. 1.4톤가량의 가벼운 차체는 고성능을 발휘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만, 연비 위주 주행에도 분명 강점인 부분이다.



벨로스터 N은 대부분의 운전자라면 한 번 정도는 운전해보고 싶은, 더 나아가면 한 번 정도는 소유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모델이다. 특정 차량의 시승을 계속 고대했던 경험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분명 좋은 차이지만, 일상생활 용도로 사용하려면 다소 생각이 복잡해진다. 특히, 교통체증이 심각한 도심지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다소 어려운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여분의 차량을 하나 보유한 상태에서 주말여행 혹은 개인 취미 생활을 위해 세컨드 카로 구입한다면 가장 이상적이라 생각된다.


현대자동차는 N 브랜드를 계속 확장시키는 중이다. 해치백에 더해 패스트백 세단, SUV, 그리고 미드십 모델까지 앞으로 출시를 앞두고 있다. 앞으로 선보이게 될 N 모델들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얼마나 가슴 설레게 만들지 새삼 기대된다.


kjh@autotribu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