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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올드하거나 클래식하거나

진정한 강자가 무엇인지 보여줬던, 기아 세피아의 광고


세피아는 기아자동차가 스포티지의 개발 과정에서 얻은 전륜구동 플랫폼을 활용해 대한민국 최초로 완전한 독자 기술을 이룬 승용차다. 기아자동차의 첫 준중형 모델이기도 한 세피아는 1993년 대전 엑스포 공식 차량으로 지정되기도 한 의미 있는 모델이다.  

세피아는 국산차 최초로 디자인을 국내에서 담당했으며, 플랫폼까지 독자 개발한 모델이다. 초기에는 마쓰다의 엔진을 사용했지만, 부분변경을 거치면서 자체 개발한 엔진을 사용했다. 세피아로 인해 기아차는 마쓰다의 종속 업체에서 협력업체로 지위가 상승되기도 했다. 주행 성능이나 핸들링 모두 동 시기에 출시된 엘란트라에 비해 스포티한 특성을 보이며 판매량 면에서도 나름 선전한 모델이다. 



세피아는 CF의 이미지 대결에서도 고성능 이미지를 밀어붙인 엘란트라에 힘찬 도전장을 내밀었다. 세피아의 유명한 CF로는 사고로 고장 난 피터빌트 359 트랙터를 쇠살로 매달아 끌고 가는 영상이다. 도로를 막고 멈춰 선 대형 트레일러를 마치 가벼운 짐을 끌고 가듯 힘차게 나아간다. 미국 애리조나주 모뉴먼트 밸리에서 촬영한 이 CF는 두 대의 헬리콥터와 30여 대의 엑스트라 차량들, 그리고 고장 난 대형 트럭이 출연한다. 주인공은 단단한 자태를 가지고 있는 자주색 세피아다. 영상의 클라이맥스는 역시 고장 난 대형 트럭을 끄는 장면. 연결 체인을 걸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자 세피아는 강력한 엔진음과 함께 지면을 박차고 나가기 시작한다. 끌려오는 집채만 한 트럭, 그리고 환호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강자를 영접하는 모습이다. 영상의 막바지에는 "급출발, 급제동을 하지 맙시다"라는 글귀로 안전을 걱정해주며 마무리된다. 



또 다른 충격적인 CF도 있는데 브레이크가 고장 나서 위험하게 달리는 버스가 등장한다. 스쿨버스에는 학생들이 가득 타있는데 운전자와 아이들 모두 공포에 떨고 있다. 이때 구세주 세피아가 나타난다. 밑도 끝도 없이 든든한 이 차량은 버스의 앞에서 충격을 최소화시키며 버스를 제동해 간다. 지나가던 열차에 부딪히려는 위험한 찰나, 완벽한 제동으로 세피아는 버스를 세운다. 영상의 중간에는 "실제 가능한 상황이 아니므로 모방하지 마십시오"라는 웃지 못할 메시지가 담겨있기도 하다.  

이런 충격적이고 인상 깊은 광고를 남긴 세피아는 자체 개발 플랫폼이라는 특성 때문에 대한민국 자동차 역사에 있어서 기념비 적인 모델로 평가받는다. 또한 1995년 WRC 오스트레일리아 랠리 비개조 부분에서 박정룡 현 아주대 교수가 세피아를 타고 우승하기도 했다. 특히나 한 대는 동급 개조 클래스의 기록을 상회했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세피아는 광고가 살짝 과장되기도 했지만, 성능이 우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나 공차 중량이 1톤을 간신히 넘을 정도로 가벼운 편이어서 경쾌한 주행이 가능했다. 초기 모델이 최고속도가 180km/h에 달할 정도로 빨랐으며, 부분변경을 단행한 후 1.8리터 엔진에서는 196km/h까지 속도가 올랐다. 이는 안전속도였을 뿐 실제로는 200km/h를 넘겨 주행도 가능했다.  

기아차는 1997년 세피아2를 선보이게 되는데 당시 경쟁 모델은 현대 아반떼와 대우 누비라였다. 디자인이 바뀌고, 크기가 커지면서 주행성능은 오히려 후퇴하게 된다. 또한 기아차가 부도가 나게 되면서 세피아2는 점점 소비자들에게 멀어져 갔다. 이후 2000년 부분변경을 출시하면서 모델명을 스펙트라로 변경함에 따라 세피아의 화려했던 역사는 끝을 맺고 말았다. 

한편, 세피아는 기아차가 현대차에 인수된 이후 스펙트라, 쎄라토, 포르테, K3까지 준중형 라인업을 이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