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승기

감성 중독, 지프 랭글러 루비콘 2도어 시승기

[오토트리뷴=김예준 기자] 미국차하면 엉성한 실내 마무리와 커다란 시트, 출렁거리는 듯한 승차감을 떠올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분명히 시승해본 랭글러 루비콘 역시 이러한 미국차의 특징이 그대로 녹아들었다. 그렇지만 직접 시승해본 랭글러, 그중에서도 루비콘 2도어는 엉성한 미국 특유의 마감을 감성으로 극복시켰다.

 


이번에 시승한 2도어의 경우 초대 지프의 성격을 현대적으로 해석했다고 보기에 충분하다. 전면의 경우 동그란 원형의 헤드램프, 7개로 구성된 라디에이터 그릴 등 기존 랭글러만의 특징이 그대로 반영됐다. 하지만 LED를 적극적으로 사용해 현대적인 느낌을 많이 풍긴다. 헤드램프는 기존 할로겐 타입에서 벗어나 LED 램프를 사용하고 있으며, 펜더에 위치한 방향지시등 역시 LED를 사용해 이전 모델이 여러 세대 전 차량의 느낌을 풍겼다면, 신형 랭글러는 동시대 차량의 느낌을 풍긴다.

 


현재 출시되는 차량들이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수평적인 전면부 디자인을 구성하는데, 루비콘은 툭 튀어나온 범퍼를 사용했다. 이는 진입각을 우선시 한 랭글러의 특징이다. 또한 누구나 쉽게 열수 있는 보닛의 경우 전체 도어가 잠긴 상태에서 보닛을 개방할 경우 동네가 떠나갈 정도로 큰 소리를 낸다.

 


측면은 구형 랭글러 2도어와 동일한 구성이다. 오히려 투박하게 각진 디자인은 국내의 랭글러 판매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4도어 모델보다 2도어 더 적합하게 느껴진다. 경첩이 그대로 드러난 도어는 손쉽게 분리가 가능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며, 가볍기까지 해 안전도에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다른 차량에서 가벼운 도어는 분명히 단점이다. 안전도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랭글러는 이 역시 감성으로 어필하고 있다.

 


차체보다 극단적으로 튀어나온 오버 펜더는 단차까지 심하고, 흔하디흔한 휠 하우스 커버 역시 찾아볼 수 없다. 조수석 펜더에는 90년대 차량에서 볼법한 안테나가 달려있다. 이는 지붕까지 분리할 경우를 대비한 것으로 랭글러의 성격을 대변한다. 또한 커다란 17인치 휠에 부착된 윌리스 지프 아이콘은 감성의 정점이다.

 


후면 역시 기존 모델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구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램프에 아낌없이 투자한 모습은 테일램프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기존 전구타입의 테일램프 대신 LED를 적극적으로 사용해 테일램프 전체가 LED로 이뤄졌으며, 입체적인 그래픽을 구성하기 위해 방향지시등과 브레이크등에는 무수히 많은 핀들을 사용했다.

 


차량 하부에 스페어타이어를 못 실을 만큼 공간이 적은 탓도 있겠지만, 오프로드 주행 시 타이어의 펑크를 대비해 후면에 스페어타이어를 부착했다. 오프로더의 느낌을 한껏 살려주는 요소로도 훌륭하다. 여기에 후방카메라까지 부착해 공간을 알뜰히 사용한 흔적이 보인다. 또한 범퍼 하단에 위치한 견인고리 역시 감추기보단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오프로드 주행 시 원활한 견인을 고려한 것인데, 요즘 차량들이 감추고 있는 것과 확실히 대비된다.

 


실내의 경우 별다른 기교 없이 단순하게 만들어졌다. 그러면서도 제각각 역할을 다하기 위해 적재적소에 배치됐다. 이전 랭글러에선 생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똑똑해진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오프로드 주행 시 필요한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다. 후방 카메라의 화질은 상당히 뛰어난 편으로 만족감을 높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간혹 반응시간이 지연되는 경우가 있어 차후 업데이트에서 보완될 여지를 남겨뒀다.

 


창문을 여는 버튼은 요즘 차량에선 보기 힘든 중앙 집중식이 사용돼 색다르게 다가온다. 또한 옆에는 요즘 차들에서 보기 힘든 시가잭이 위치하고 있다. 그 아래에 위치한 스웨이 바 분리 버튼과 전륜과 후륜 디퍼렌셜락 버튼은 랭글러만의 특징이다. 루비콘의 경우 앞, 뒤 두 개가 달려 있다. 이는 랭글러의 뛰어난 오프로드 성능에 일조한다. 또한 대부분의 버튼들이 촉감을 논할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하다. 이 역시 랭글러는 감성으로 승화시켰다. 단순한 버튼 촉감들과 달리 자동 변속기의 변속 감각은 부드러우면서도 뛰어난 직결감을 자랑한다. 그러나 사륜구동을 조작하는 트랜스퍼 레버의 경우 상당히 뻑뻑해 오작동을 막는 데 도움을 준다.

 


오프로드를 우선시 한 목적이 뚜렷한 차량인 만큼 시트가 운전자를 잘 잡아주지는 못한다. 게다가 수동 방식을 사용해 사용방법 역시 단순하고 직관적이다. 1열과 2열에 상관없이 시트를 젖히기 위해선 시트에 달려 있는 끈으로 된 고리를 당기면 된다. 여기에 1열의 경우 다이얼까지 추가돼 섬세한 시트 포지션 조작을 돕는다.

 


투박한 랭글러지만, 다운사이징에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구형 모델이 3.6리터 V6 가솔린 엔진을 탑재했던 것과 달리 이번 모델에서는 모든 라인업이 2리터 가솔린 엔진으로 단순화됐다. 272마력의 최고출력과 40.8kg.m의 최대토크를 발휘하며, 8단 자동변속기가 맞물린다. 디젤차처럼 초반부터 발휘되는 토크가 인상적이며, 실내를 타고 꾸준히 들어오는 공기흡입 소리는 스포츠카 못지않게 강렬하다.

 


온로드에서 주행한 랭글러는 분명히 단점만 가득하다. 차량의 모든 세팅이 온로드보다는 오롯이 오프로드를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온로드 주행에서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로 헐렁한 조향 감각은 현대차의 초기형 MDPS 차량은 탄 것처럼 시종일관 조타를 하게 만들고, 코너에서는 차세제어장치가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 불안함을 가중시킨다. 여기엔 랭글러의 헐렁한 조향 감각의 영향도 있지만, 랭글러에 기본 적용된 머드 타이어도 한몫했다.

 


그러나 오프로드에만 들어서면 앞서 나열한 단점이 모두 장점으로 바뀐다. 헐렁했던 조향 감각은 스티어링 휠의 기어비가 길게 세팅된 덕분인데, 덕분에 오프로드에선 섬세한 조작으로 장애물을 피하기 쉽다. 게다가 유연한 서스펜션은 뛰어난 휠 트러블을 만들어 시종일관 타이어의 그립을 확보하기 위해 유연하게 움직인다.

 


단순했던 기존의 사륜구동 시스템은 변화를 맞았다. 기존 루비콘의 경우 2H, 4H, 4L 등의 기본적인 사륜구동 모드만 지원했었다. 그러나 신형 루비콘의 경우 4H 오토 모드가 새롭게 추가된 락트랙 사륜구동 시스템이 적용돼 웬만한 오프로드의 경우 4H 오토 모드로 충분한 험로 주파 능력을 보여준다. 루비콘의 무기인 디퍼렌셜 락과 스웨이 바 해제 기능을 써보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다.

 


랭글러는 모든 부분이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기계의 느낌이 강한 차량 중 한대다. 차량의 모든 기능은 오프로드에 맞춰져 그 흔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조차 찾아볼 수 없다. 정속 주행을 위한 크루즈 컨트롤만 있을 뿐이다. 그나마 있는 안전사양이라곤 사각지대 모니터링 시스템이 유일하다. 주행 중 열심히 사이드 미러를 통해 옆 차들이 지나간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게 고마울 정도다.

 


랭글러는 요즘 시대에 어울리는 차는 분명히 아니다. 연비를 위해 유선형의 디자인을 채택하지도 않고 꿋꿋하게 투박한 외관 디자인을 이어가고 있으며, 안락한 승차감은 기대할 수도 없다. 마감재도 부실하다. 그러나 랭글러는 다른 차들이 쉽게 할 수 없는 오프로드 주행을 막힘없이 소화한다. 이는 랭글러가 30년이 넘는 역사를 유지할 수 있는 인기의 비결이다. 또한, FCA 코리아는 올해 지프의 판매량을 올리는데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는데, 과연 랭글러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kyj@autotribu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