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트리뷴=김준하 기자] 시트로엥은 1974년 푸조에 인수되면서 PSA 그룹의 일원이 된 브랜드다. 같은 그룹 내의 푸조 브랜드보다 파격적이고 개성 넘친 디자인이 주된 특징이다. 시트로엥 브랜드의 중형 미니밴 그랜드 C4 피카소의 2세대 모델을 시승했다.
시트로엥 브랜드의 패밀리룩은 ‘더블 쉐브론’이라 불리는 특유의 라디에이터 그릴로 구분된다. 쉐브론은 ‘V’자 또는 ‘A’자 모양의 견장을 뜻하는 표현으로, 시트로엥은 자사 엠블럼을 디자인 요소로 활용, 브랜드 이미지를 강조한다. LED 주간주행등까지 일체형으로 연결된 전면부 디자인은 차체 폭을 넓어 보이게 만들고, 다른 모델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개성도 심어준다.
하단의 분리형 헤드램프는 스티어링 휠과 조향 연동돼 특히 야간 시인성이 좋다. 헤드램프 사이의 라디에이터 그릴은 번호판과 센서가 삽입되고 블랙 유광 패널을 더해 고급스럽게 꾸민다. 범퍼 하단의 공기흡입구는 폭넓게 확장해 안정감 있는 차체 이미지를 구현한다. 테두리를 유광 크롬으로 감싸 포인트도 살린다. 전방 카메라와 안개등이 범퍼 하단에 삽입되는데, 안개등은 코너링 램프의 기능도 수행한다.
측면은 넓은 윈도우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특히 A 필러를 앞으로 길게 빼고, 1열 도어와의 사이에 큰 윈도우를 추가 삽입해 사각지대가 거의 없다. 윈도우 라인은 뒤로 향할수록 조금씩 작아지는 형태지만, 실내에서 넓은 개방감을 느끼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A 필러에서 D 필러에 이르는 전체 테두리는 실버 컬러로 감싸 둔중해 보일 수 있는 미니밴에 산뜻한 느낌을 추가한다. 디자인 완성도를 높임과 동시에 루프 레일로도 활용할 수 있어 기능성도 살린 구성이다.
그랜드 C4 피카소의 전장은 4,600mm, 전폭 1,825mm, 전고 1,645mm, 휠베이스 2,840mm로 국산 미니밴인 카렌스와 올란도 사이에 해당하는 크기다. 투톤 컬러의 18인치 휠은 미쉐린 파일럿 스포트 3 타이어가 함께 장착된다. 미니밴임을 고려할 때, 차급에 비해 성능이 좋은 타이어를 장착한 셈이다.
후면에는 ‘ㄷ’자 모양 테일램프가 삽입된다. 투명 커버가 적용돼 깔끔한 이미지를 더해주고 5인승 모델 C4 피카소와 구별되는 디자인을 사용한다. 방향지시등, 후진등이 모두 들어간 일체형 구조로 제동등에 3D 그래픽을 사용해 특히 야간에 고급스러움을 더해 준다. 트렁크 손잡이를 기준으로 가로로 확장된 크롬바는 후면부를 적절하게 양분해 안정적인 구도를 만들어 준다.
'그랜드 C4 피카소'라는 이름은 WLTP 인증 이후 수입되는 모델부터 '그랜드 C4 스페이스투어러'라는 모델명으로 변경된다. 해외 시장에서는 이미 지난 6월부터 5인승은 'C4 스페이스투어러', 7인승은 '그랜드 C4 스페이스투어러', 9인승은 '스페이스투어러'로 변경된 바 있다. 모델명의 변화로 인해 시트로엥 미니밴 라인업 구성은 보다 일목 요연하게 정리된다.
범퍼 하단은 후방 안개등이 삽입된다. 그랜드 C4 피카소는 트렁크에 테일램프가 삽입된 일체형 구조를 택한다. 트렁크가 크게 열리기 때문에 화물을 적재하기에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는 대신 사고를 비롯한 돌발 사항이 발생할 때 후방 안전을 위한 별도의 조처가 필요한 구성이다. 그래서 트렁크가 열리면 후방 안개등에 삽입된 방향지시등이 작동하게 되고, 전조등이 켜진 상태에서는 후방 안개등이 자동 점등되는 기능을 갖춘다.
그랜드 C4 피카소의 실내는 독특하고 미래지향적이다. 위로 높게 솟은 전면 윈도우는 개방감을 극대화한다. 대형 윈도우와 중앙 배치된 구조의 레이아웃을 보면 마치 소형 헬기에 탑승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극대화된 개방감이 부담스럽다면, 선바이저를 끌어내려 윈도우 면적을 줄이는 슬라이딩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센터패시아에는 2개의 디스플레이가 삽입된다. 상단의 12인치 디스플레이는 속도계와 회전계를 비롯한 각종 운행 정보가 표시된다. 몇몇 RV 모델들이 동일한 구조를 택하는데, 그랜드 C4 피카소는 디스플레이의 압도적인 크기와 대시보드 안쪽으로 깊게 삽입된 위치로 인해 시인성이 좋다. 7개 좌석 모두의 안전벨트 착용 여부도 확인할 수 있어 탑승객의 안전에도 철저히 대비한다.
송풍구 아래 배치된 7인치 디스플레이는 공조장치, 오디오 조작, 차량 편의장치 설정 등을 조작할 수 있다. 디스플레이 좌우에 배치된 조작 버튼들은 터치 형태로 돼 있는데 인식률이 좋은 편이다. 디스플레이 하단은 자동 주차 버튼, 전자식 주차브레이크와 도어 개폐 버튼이 자리 잡는다.
운전석 스티어링 휠은 미니밴에 어울리는 크기다. 여유롭고 편안하게 운전할 수 있도록 직경이 크고 조작 버튼들이 4개 영역으로 나뉘어 배치된다. 크루즈 컨트롤과 오디오, 차간 거리 설정 및 전화 기능 등을 조작할 수 있다. 큰 공간에 기능별로 버튼들을 알맞게 배치해 조작 편의성이 높다. 스티어링 휠 왼편 하단 버튼은 중앙 디스플레이 화면을 끄는 기능을 수행해 야간 운전 시 동승자의 눈부심을 방지해 준다.
스티어링 휠 뒤편으로는 패들 시프트와 컬럼식 기어 레버가 장착된다. 기어 레버는 손끝으로 간단히 움직일 수 있을 만큼 조작성이 우수하고 각 단의 체결감이 뛰어나 오작동 가능성이 적다. 기어 단수를 상단 디스플레이에 표시해 직관성도 더한다.
시승 차량의 시트는 가죽과 직물이 혼용된 형태다. 쿠션감이 있어 안락하고 허벅지와 측면 지지력도 적당한 수준이다. 1열 시트에 더해진 팔걸이는 편안한 자세를 잡게 도와준다. 운전석과 동승석에 장착된 안마 기능은 허리 부분 롤러가 구동하는 방식인데 그리 시원하진 않다. 센터 콘솔은 기어 레버가 없는 대신 수납공간을 널찍하게 사용할 수 있다. 2단 탈착식으로 구성돼 상단을 분리하면 기내용 캐리어를 적재할 수 있을 만큼의 공간이 확보된다.
그랜드 C4 피카소의 2+3+2 구조 시트는 모두 독립식이다. 2열 시트는 개별 슬라이딩과 각도 조절이 가능해 편안한 자세를 갖출 수 있고, 3열의 원활한 승하차를 도와준다. 1열 시트보다는 다소 작지만 성인이 앉기에 크게 무리 없는 크기다. 2열 바닥은 평평한 구조로 돼 있고, 레그룸과 헤드룸 모두 넉넉하기 때문에 장거리 이동에도 편안한 탑승이 가능하다. 시트 슬라이딩과 각도 조절은 조작 레버가 기능별로 나누어져 있어 익숙하게 사용하려면 어느 정도 적응 시간이 필요하다.
3열 시트는 트렁크 바닥에 수납이 가능한데 직관적인 구조로 사용 편의성이 높다. 2열에 비하면 3열 공간은 좁은 편이다. 레그룸과 헤드룸이 모두 부족하고, 2열을 슬라이딩하면 여유 공간이 더 확보되지만 성인이 오랜 시간 사용하기는 어렵다.
그랜드 C4 피카소는 1.6 모델과 2.0 모델로 나누어진다. 시승 차량은 최고출력 150마력, 최대토크 37.7kg.m의 2리터 디젤엔진과 6단 자동변속기가 맞물린다. 전륜구동 방식으로 공인연비는 12.9km/h 지만, 여느 PSA 그룹의 모델들이 그러하듯 실제 연비는 훨씬 뛰어난 기록을 보인다.
시동을 걸면 디젤 엔진의 진동과 소음이 그대로 전달된다. 차급과 용도를 고려하면 충분히 수긍할 만한 수준이다. 2리터 디젤 엔진은 고성능이라고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차체를 거동하기에 알맞은 힘을 발휘한다. 초반 가속부터 고속 구간에 이를 때까지 출력이 부족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폭발적인 성능보다는 꾸준히 차체를 밀어준다는 느낌으로 가속을 지속한다.
가족 구성원이 탑승하는 미니밴으로 과격한 운전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래서 시승도 최대한 일상 영역에서 얼마큼 편안함을 주는지를 고려해 운전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SUV 모델들은 시원한 가속감과 안정감 등으로 인해 주행성이 높게 평가되는 경우가 많은데, 탑승객의 안락함 부면에서는 미니밴이 한 수 위다. 승용 세단 같은 편안한 승차감, 더 넓은 공간과 개방감은 장거리 여행에도 탑승객 모두를 여유롭게 만들어 준다.
물론 필요에 따라서는 패들 시프트를 사용해 스포티한 운전을 즐길 수도 있다. 컬럼식 기어에는 매뉴얼 모드가 별도로 삽입돼, 고 rpm을 적극 사용하면서 성능을 끌어낼 수 있게 만들었다. 운전자가 개입할 때까지 변속 시점을 최대한 늦춰 운전자의 의도대로 거동할 수 있게 도와준다.
미니밴임을 감안하면 고속 안정성이나 굽이 길 주행 성능도 우수한 편이다. 기본기가 잘 갖춰진 차량이라는 느낌이 저절로 들게 하고 신뢰감을 더해준다. 여기에 더해 미쉐린의 고성능 타이어는 급격한 코너링에도 차체가 차선을 따라 어긋남 없이 주행하도록 도와준다. 시트로엥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승차감과 성능을 중요시하는 유럽 소비자들의 특성에 따라 미니밴임에도 고성능 타이어를 사용한다고 언급했는데, 그 이유가 수긍이 가는 구성이다.
PSA 그룹의 최신 모델에는 안드로이드 기반 내비게이션 시스템 '카블릿'이 장착된다. 차량 디스플레이에 티맵이나 카카오내비 같은 모바일 내비게이션과 주요 안드로이드 애플리케이션이 내장돼 있어, 다양한 기능을 편리하게 구현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스마트폰과 차량을 유선으로 연결할 필요가 없고, 원하는 내비게이션 앱도 취향에 따라 선택해 사용할 수 있다. 지금은 스마트폰을 통해 인터넷에 연결해야 하지만, 추후 차량 전용 유심을 삽입해 스마트 기기 없이 차량 자체 조작 및 연결이 가능하도록 개선될 예정이다.
그랜드 C4 피카소는 최대 7인까지 이용할 수 있는 미니밴인 만큼 탑승자들을 위한 편의 사양도 다수 장착된다. 1열 도어와 센터패시아 하단은 각종 수납공간과 USB 포트가 마련돼 있다. 미끄럼 방지 패드나 직물 재질로 마감 처리해 물건 수납으로 인해 잡소리가 발생하지 않도록 신경 썼다.
2열은 도어 커튼과 독립식 공조장치가 마련된다. B 필러에 삽입된 공조장치는 풍향은 물론, 풍량도 4단계까지 조절된다. 전면 윈도우 상단에 마련된 컨버세이션 미러는 어린아이가 2열에 탑승할 경우 수시로 상태를 확인하는 데 유용하다.
많은 짐을 수납하고 싶다면 2열과 3열 시트를 풀플랫으로 접어 사용하면 된다. 기본 트렁크 공간은 645리터, 2열까지 폴딩하면 최대 1,843리터까지 늘어난다. 키가 높은 물건을 싣고 싶다면, 2열 시트의 바닥을 따로 접어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 화분과 같은 물건을 적재하기에 적합하고, 앞으로 최대한 슬라이딩 해 3열 승객이 편리하게 탑승하도록 조정할 수도 있다.
PSA 그룹의 모델을 시승하면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부분은 연비에 있어서 탁월한 수치를 보인다는 점이다. 공인 연비가 어떻게 기록되든, 실제 주행 연비는 대개 월등히 높은 수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랜드 C4 피카소도 마찬가지다. 고속도로에서는 20~22km/l, 시내 구간에서는 16~18km/l의 연비를 꾸준히 기록한다. 잠시 속도를 높여 주행해도 연료비가 부담되지 않는 점은 큰 장점이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차선 유지 시스템은 편리한 장거리 운행에 꼭 필요한 장비다. 느긋한 운전을 즐길 수 있으며 긴급 상황에서의 대처 능력도 뛰어나다. 차간 거리 설정도 다소 여유로운 편이라 운전자와 탑승객 모두 안락하게 이동할 수 있다.
미니밴은 가족 구성원이 함께 이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안전성 역시 고려해야 할 부면이다. 그랜드 C4 피카소는 유로 NCAP 안전도 테스트에서 최고 안전 등급을 받은 바 있다. 특히 어린이 승객 안전도 부면은 88%를 기록해 볼보 XC 시리즈보다도 높은 수준을 달성했다. 어린 자녀를 동반한 부모들이라면 특히 관심을 가져야 할 요소다.
약간의 아쉬움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2열 시트는 활용성이 높지만, 시트 자체를 조정하기는 다소 어렵다. 적지 않은 힘이 들어가야 하고, 사용방법도 복잡한 편이라 어린아이나 여성 운전자가 능숙하게 사용하기는 부담스럽다. 1열에 비해 2열과 3열 수납공간이 풍부하지 않은 점 또한 아쉬움을 남긴다. 후방카메라는 360도 전방위 화면도 지원되는데 반해 화질은 다소 떨어진다.
그랜드 C4 피카소는 넉넉한 실내 공간과 안정적인 승차감, 뛰어난 연비와 같은 기본기가 탄탄한 미니밴이다. 이러한 실용성에 더해진 감성적인 디자인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희소성이 높은 수입 디젤 미니밴으로서 그랜드 C4 피카소, 아니 '그랜드 C4 스페이스투어러'가 얼마나 존재감을 드러내게 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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