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는 종류가 다양하다. 그 종류에 따라 용도도 다르다. 그게 일반적인 자동차다. 하지만 볼보 크로스컨트리는 그렇지 않다. 마치 종합선물세트처럼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퍼포먼스를 발휘한다. 무엇을 원하던 그 이상의 능력을 해낸다. 디자인, 마감, 브랜드, 주행성능, 안전, 실용성 뭐 하나도 빠지는 게 없다. 사람으로 치면 뭐든 잘하고, 빈틈이 없다는 엄친아 같은 존재다.
외관은 기본적으로 왜건을 기초로 한다. 그래서 세단보다 더 길어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전장만 겨우 27mm 차이가 나기 때문에 시각적인 차이만큼 실제 수치에서 큰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대신 일반적인 왜건이 아니라 크로스컨트리 모델이기 때문에 전고가 97mm 더 높다. 그래서 쌍용 티볼리 같은 소형 SUV들과 비교해보면 전고가 50mm 밖에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비슷하다.
크로스컨트리 모델이기 때문에 디자인도 왜건이나 세단에 비해서는 훨씬 남성적이다. 범퍼 하단부 디자인이나 휠하우스 등이 플라스틱으로 마감돼서 비포장길 주행하다 돌이 튀거나 긁힐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당연히 플라스틱 재질이어도 긁히긴 하지만, 긁히더라도 티가 덜 나고, 도장 면보다 관리가 쉽다는 이점이 있다. 휠 역시도 크로스컨트리에 어울리게 굉장히 멋스럽지만, 실용적이기도 하다. 휠은 19인치가 장착되지만, 차체 사이즈와 차량의 콘셉트에 맞춰 타이어도 235/50R19로 넉넉한 조합을 이뤄 비포장길에서도 휠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했다.
왜건은 볼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후면 디자인의 완성도도 역시 크로스 컨트리가 최고다. 정말 최고라는 말을 아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완성도가 매우 높다. 개성이 뚜렷해서 볼보의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그렇다고 어색하지도 않다. 테일램프 디자인은 차량이 더욱 세련되어 보이게 해주면서 폭도 넓어 보이게 하니 더할 나위가 없다. 그리고 범퍼 하단으로 선명한 크로스 컨트리를 차량의 정체성을 더욱 명확히 해준다.
외관상 특별히 놀랄만한 부분이 있었다면, 와이퍼다. 비포장길을 주행하다 보니 와이퍼를 작동시켜야 할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그런데 와이퍼 자체에서 워셔액이 뿌려져 앞유리에 골고루 워셔액이 분사됐다. 그러면서도 워셔액이 차량 주변으로 튀지 않아 깔끔하게 와이퍼를 작동시킬 수 있었다. 이런 기능은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컨버터블 같은 차량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인데, 이런 디테일은 역시 볼보답다.
실내는 S90과 같다. 특별히 언급할 게 없을 정도로 앞서 시승했던 S90과 같고, XC90과도 같다. 시승할 때마다 만족스러운 부분은 깔끔한 계기반, 황홀한 B&W 스피커, 편안한 시트, 고급스러운 실내를 꼽을 수 있고, 터치스크린은 보기에 좋아도 조작성이 떨어져 불편하다.
크로스컨트리는 왜건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적재함이 넓다는 게 장점이다. 그래서 뒷좌석까지 접으면 큰 자전거를 2대 이상도 거뜬히 적재할 수 있다. 현대 싼타페보다 천장이 낮긴 하지만, 전폭rhk 길이가 꽤 나오는 만큼 실용성은 어지간한 중형 SUV와 비교될만하다. 또 2열 시트는 트렁크에서 버튼으로 접을 수 있고, 시트 뒷면과 적재공간은 모두 부드러운 재질로 마감이 되어 있어서 적재된 물건의 손상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또 적재함 커버와 그물망도 기본 제공돼 짐을 많이 싣더라도 상당히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S90을 시승할 때는 디젤엔진이 그냥 무난한 느낌이었는데, 크로스컨트리에서 느껴지는 만족감은 또 색다르다. 한마디로 찰떡궁합이다. 크로스컨트리라는 콘셉트에 디젤엔진 자체가 잘 어울리고, 차량 콘셉트를 인지하고 있어서인지 새삼 진동과 소음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저속에서, 특히 도심에서는 저속 주행 시 가속페달을 과감하게 밟으면 변속기가 다소 울컥거리곤 하는데, 이런 상황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스트레스 없이 편안하다.
크로스컨트리에 장착되는 2리터 디젤엔진은 최고출력이 235마력, 최대토크는 48.9kg.m에 달한다. 같은 배기량의 현대 싼타페가 186마력의 최고출력을 발휘하니 볼보의 기술력이 상당한 셈이다. 출력이 넉넉한 만큼 고속주행성능도 놀랍다. 가속이 폭발적이진 않지만, 차량을 경쾌하게 밀어 부친다. 체감상 느낌은 그렇다. 그러나 속도계를 보면 바늘이 금세 오른쪽 끝까지 꺾여있다. 물론 재가속 시에도 허둥대거나 버벅이는 등의 답답함은 없다. 이는 가속성능은 좋은데, 주행성능 자체가 다소 편안하게 세팅되어 있다고 보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주행성능이 편안하게 세팅되어 있다고 해도 고속도로에서 너무 물렁하거나 불안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 세단을 왜건으로 만들고 왜건을 크로스컨트리로 만들었기 때문에 기본적인 승차감은 세단과 별 차이가 없다. 주행감성이 세단과 같다고 표현해도 무방할 정도. 그래서 아무리 크로스컨트리라고 해도 국산 세단보다 고속안정성이 월등히 뛰어나고, 풍절음이나 소음도 잘 억제되어 있다. 오히려 독일차보다 덜 딱딱한 세팅으로 인해 중장년층에서도 환영할만한 세팅이다.
승차감 자체도 편안하고, 안정감 있으면서 시트까지 온몸을 편안하게 감싸주니 장거리 주행도 부담이 없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라 반 자율 주행 기술인 파일럿 어시스트까지 지원한다. 파일럿 어시스트는 없어도 불편하지 않지만, 있으면 너무 편안해서 이 기능을 끄기가 힘들다. 운전자의 피로감을 덜어주는 건 1차적이지만, 그 외에도 사고를 예방하면서 안전운전을 하고, 일정 속도로 주행하기 때문에 연비 개선 효과까지 볼 수 있다. 다만 파일럿 어시스트 기능은 국내 개발 기술이 아니기 때문에 국내 도로환경에 최적화된 국산차와 달리 점선이 약간이라도 흐려지거나 끊기면 차선을 넘어가기도 한다.
일반적인 온로드 환경에서의 주행도 충분히 좋지만, 진짜는 비포장길이다. 비포장길에서 주행해야 진정 크로스컨트리를 조금이나마 경험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자갈과 흙이 뒤 섞인 비포장길에서 흙먼지를 날리며 속도를 높여도 잡음은 들리지 않는다. 이미 난장판이 되었어야 할 차량 실내에 있는 짐들도 모두 제자리 그대로다. 바닥에 박힌 작은 돌을 타 넘으면서는 견고한 섀시를 사용했다는 느낌도 느껴볼 수 있다. 스티어링 휠도 너무 가볍지 않고, 변속기 세팅도 도심에서 느껴졌던 울컥거림은 느낄 수 없고, 아주 깔끔하다.
신경 써서 연비 주행을 하면 연비가 당연히 안 좋을 리가 없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시승하면서 연비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주행하는 편이다. 크로스컨트리는 연비 주행을 하지 않더라도 서울과 강원도 영월은 왕복하고도 절반 이상의 기름이 남아있었다. 또 3만 원을 주유하면 주유 게이지가 딱 절반까지 올라간다. 즉, 서울과 영월 왕복에 3만 원도 들지 않은 것이다. 서울과 영월 왕복에 3만 원만큼의 기름도 쓰지 않았다면 연비는 매우 우수한 편에 속한다. 참고로 우등고속을 타면 버스비도 이것보다는 더 든다.
시승을 하는 내내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었고, 기대 이상이었다. 앞서 S90을 시승했기 때문에 비슷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모든 게 완전히 달랐다. 시승하고 나면 가끔 반납하기 싫은 차가 있다. 이번에 시승한 크로스컨트리가 그런 차였다. 더 많은 매력이 숨겨져 있을 것만 같아서다. 가족이 있거나 장거리 주행을 많이 한다면 꼭 고민해보는 것이 좋겠다. 물롱 평소에 운행하기에도 부담은 없다. 차량가격이 세단보다 400만 원 정도 더 비싸긴 하지만, 그래도 SUV보다 훨씬 편하면서 세단의 승차감을 누릴 수 있으니, 이 분야에서는 마땅한 대안이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