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테마/올드하거나 클래식하거나

농업의 신으로 군림했던, 추억의 기아 세레스


기아자동차의 세레스는 1983년부터 1999년까지 판매됐던 트럭이다. 도심에서는 보기 힘들었지만, 산간지방이나 도서지역에서는 흔히볼 수 있던 차량이다. 세레스는 우리말로 농업의 신이라는 뜻이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농업의 신이라는 표현에 부족함이 없었을 정도로 농업에 많은 도움을 줬던 차량이다. 그래서 농민 리무진이라는 별명이 있으며, 특히 덤프 모델은 농업인들의 드림카같은 존재였다. 


농업의 신, 농민 리무진, 농업인들의 트림카 등의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이유는 수 없이 많다. 강원도 산골에서 자란 필자는 유년시절 세레스를 보면서 참 신기한 차량이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위험하게 작업하는 경우가 없지만, 20년 전만 하더라도 비탈이 심한 곳에서도 밭을 일궈 배추 농사를 많이 지었다. 여기서 경운기 타이어를 장착해서 운행하던 세레스가 굴렀는데, 아무렇지 않게 여러사람이 밀고, 경운기로 당겨 세워 다시 수확한 배추를 큰 길에 주차해 둔 5톤 트럭으로 날랐다. 여름에는 경운기처럼 약도 칠 수 있었고,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려도 적재함에 흙과 모래를 한 가득 싣고, 스터드 타이어와 사륜구동 조합으로 어디든 주행이 가능했다. 



세레스는 기아 봉고를 베이스로 영농, 임업 용도에 맞게 엔진의 토크를 높여 파트타임식 4WD를 장착해 출시한 모델이다. 초기에는 2WD 모델만 판매되었으나, 80년대 후반 4WD 모델을 본격적으로 출시하며 판매량을 늘렸다. 험준한 지형에서도 주행이 가능하도록 최저지상고와 시트 포지션이 높았으며, 동력인출장치인 PTO가 장착되어 양수기, 탈곡기 등 각종 농기계를 구동할 수 있었다. 


(사진 출처, egloos.zum.com/areaz/v/4390962)


농업인들의 구매 부담을 덜고, 원가 절감을 위해 편의사양은 찾아볼 수 없었다. 기본 조작 장비도 굉장히 단순한 것들이 장착됐다. 요즘 흔하디 흔한 파워 스티어링은 물론이고, 1996년형 이전 모델에는 에어컨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특히나 주차용 핸드브레이크가 지렛대 방식이 아니라, 막대형 레버를 '당겨서'걸고 돌려 넣어서 푸는 케이블식이었는데, 이게 그렇게 멋져보일 수가 없었다. 편의사양이라고는 라이트와 라디오 정도가 전부였다. 덕분에 고장이 적고 관리가 쉬운 게 장점으로 꼽히는 차이기도 하다. 


(캡처, KBS 1박 2일)


세레스가 방송에서도 이슈가 됐던 적이 있다. 중기형 세레스는 예능 프로그램인 1박 2일 시즌 3에 나왔을 때였다. 제작진이 원래 주인에게 직접 구매했다고 하여 주목받은 이 차량은 엄청날 정도로 낡아 보이는 내부 모습이 압권이었다. 방송인 김준호 씨가 원팔이라는 별명을 붙였는데, 차량 번호판이 강원 8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후 명실공히 상근이의 뒤를 잇는 1박 2일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농촌에서 드림카 같은 존재로 여겨졌던 세레스지만, 휠베이스가 짧고, 최저지상고가 높아 무게중심이 높으며, 차량 무게가 1.1~1.4톤 정도로 가벼워서 쉽게 전복되는 차량이기도 했다. 또한 서스펜션이 전부 판스프링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승차감이 상당히 떨어졌으며, 탑승곤간인 캡 또한 철판 한 장으로 만들어져 안전에 매우 취약하고, 주행 속도도 느리지만, 엔진 소음이 엄청났다.



파워트레인은 2.2리터 디젤 엔진을 장착해 최고출력 60마력 최대토크 14.5kg.m을 발휘했고, 후기 모델은 2.4리터 엔진을 장착하기도 했다. 2.4리터 모델도 출력은 비슷했는데, 요즘 차량들을 기준으로 보면 힘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대신 차량이 가볍고, 구동손실이 적었던 것으로 예상된다. 또 출력이 약한 만큼 브레이크도 드럼을 사용했다. 


(사진 출처, 유투브 euimyeung84)


세레스는 배기가스 규제로 인해 2000년대에 봉고 프런티어에 통합되는 형식으로 단종됐다. 세레스가 단종된 후 기아차에서는 봉고 프런티어의 사륜 구동 모델을 출시, 세레스의 자리를 대체하게 되면서 농업인들의 드림카였던 세레스는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중고차는 약 100만 원 내외에 활발히 거래되고 있으며, 산간지방이나 도서지역에서는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