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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올드하거나 클래식하거나

메르세데스-벤츠와 앰블럼만 달랐던 쌍용 이스타나

쌍용자동차는 메르세데스-벤츠의 파워트레인을 구입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무쏘가 있고, 체어맨 1세대는 플랫폼까지 메르세데스-벤츠의 것과 같았다. 하지만 쌍용차와 메르세데스-벤츠의 관계를 극적으로 보여준 모델은 이스타나였다. 이스타나는 쌍용차가 1995년부터 2004년까지 9년간 판매했던 승합차로 쌍용차 역사상 유일무이 했던 승합차다.

 


쌍용자동차가 메르세데스-벤츠의 차량을 앰블럼만 바꿔 판매할 수 있었던 것은 메르세데스-벤츠와의 제휴 덕분이었다. 당시 메르세데스-벤츠는 쌍용차에서 디젤엔진 기술을 가져갔고, 쌍용차는 메르세데스-벤츠에서 OEM으로 이스타를 생산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됐다. 쌍용차로써는 당연히 손해 보다는 이득이 많았던 거래였다.

 

현대 그레이스와 기아 프레지오 사이에서 이스타나는 세대를 앞선 디자인이었다. 현행 E클래스가 다른 모델보다 디자인이 한 세대 앞선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원박스 형태는 기존에 봤던 승합차와 같았지만, 디자인 품질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독특한 구석도 많았다. 당시 국산 승합차들은 일본 승합차들의 영향을 받아서 후륜구동 구조를 채택해왔지만, 이스타나는 국산 승합차 최초로 전륜구동 방식을 채택했다. 엔진이 앞에 있고, 전륜구동을 사용했기 때문에 프로펠러 샤프트가 필요 없었고, 덕분에 공간 확보에 매우 유리한 조건이었으며, 실제로도 동급 승합차 중 가장 넓은 실내를 자랑하기도 했다.

 


또 엔진이 앞에 위치하면서 전륜구동인 FF구조 덕분에 겨울철 눈길에서도 경쟁모델보다 비교적 안전하게 주행이 가능했다.

 

이스타나는 엔진이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로 튀어 나와 있었다. 이런 구조는 기존에 판매됐던 현대 그레이스나 기아 프레지오보다 선진화된 구조여서 엔진오일을 주입하거나 부동액을 주입하기 위해서 시트를 뜯어내거나 할 필요가 없이 후드만 열면 간단하게 해결됐다. 

 

기존의 승합차들은 모두 운전석과 동승석 사이에 시트가 하나 더 준비되어 있어서 1열에도 3명이 탑승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스타나는 앞좌석이 2개였기 때문에 맨 뒤 좌석은 3인승이 아닌 4인승으로 제작해 경쟁모델과 탑승인원을 맞췄다. 탑승인원은 9인승, 12인승, 15인승이었는데, 예를 들어 9인승의 경우 2+3+4, 12인승은 2+3+3+4 구조였다.

 


엔진이 경쟁모델보다 앞부분으로 약간 더 튀어나온 덕분에 안전성테스트에서도 항상 좋은 점수를 받았다. 경쟁모델은 충돌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서 범퍼를 강제로 늘렸다. 그러나 이스타나는 메르세데스-벤츠에서 가져온 모델답게 원통형 프레임과 높은 섀시 강성을 자랑했다. 결정적인 이유라고 할 수는 없지만, 엔진룸도 약간의 충격을 흡수한 덕분에 범퍼를 억지로 늘리지 않고도 최고의 안전등급을 받을 수 있었다.

 

차량가격도 승차인원에 따라 1,056만 원에서 1,249만 원으로 당시에는 경쟁모델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미 디자인이나 넓은 실내 등의 강점이 많았지만, 메르세데스-벤츠의 후광을 입고 출시된 소식이 알려지면서 판매량은 더욱 가파르게 증가했다. 특히 당시에는 학원가의 전설이라고 불리는 현대 그레이스의 판매량이 압도적이었는데, 쌍용 이스타나가 출시되면서 학원차 시장을 양분하기까지 했다.

 


이스타나는 배지 엔지니어링이라고 불릴 정도로 메르세데스-벤츠의 MB100 OEM으로 고스란히 생산한 모델이다. 그러나 사실 모든 게 똑같았던 건 아니다. MB100에는 자동변속기가 준비되어 있었지만, 쌍용차는 제작 기술상 한계로 인해 결국 자동변속기 모델을 출시하지 못했다.

 

3리터 엔진의 최고출력이 95마력에 최대토크도 19.6kg.m에 불과했으니 성능을 충분히 끌어내려면 수동변속기가 유리하기도 했을 법하기도 했다. 그러나 DMF(듀얼 매스 플라이 휠)를 적용하지 않고 SMF를 적용해 기어 변속 시 차량의 울컥거림이 심했다. 여기에 엔진룸의 방음처리가 깔끔하게 되지 못해서 엔진 소음도 굉장히 심했으며, 조금 더 과장을 보태 차를 타는지 말을 타는지 헷갈렸을 정도였다.

 

이스타나는 화려한 판매량과 스펙을 자랑했지만, 쌍용차에게는 수익성이 높은 모델이 아니었다. 배기가스 총량제도 충족해야 했으며, 이스타나가 단종된 이후에는 원박스카에 대한 안전규제까지 마련되면서 이런 형태의 승합차는 국내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