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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올드하거나 클래식하거나

강남 아파트보다 비쌌던 그 차, 현대 그라나다

현대 그랜저가 국내 자동차 역사를 다시 쓰며 역대급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또 고급 브랜드인 제네시스를 런칭해서 다양한 신차를 개발 중이고 9월에도 G70의 출시를 앞두고 있다. 요즘 들어 현대차가 부쩍 고급차 시장에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는데, 사실 현대차는 과거부터 고급차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 중 한 대인 그라나다는 유재석도 방송에서 여러 차례 언급했을 정도로 한 시대의 획을 그은 고급차였다. 평소 차에 대해 관심이 많던 그는 “그라나다는 당시 친구들이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소문만 무성했던 최고의 차”라고 말했다. 이처럼 그라나다는 국내에서 최고급 승용차를 원하는 수요층을 위해 현대자동차가 판매했던 유럽 정통 스타일의 후륜구동 준대형 고급 승용차다.



현대 그라나다? 포드 그라나다?

그라나다는 국내에서 1978년 12월 시판에 들어갔다. 1978년 10월부터 1985년 12월까지 총 4,743대가 생산되었다. 지금은 보기 드문 2리터 배기량에 6기통 형태의 엔진을 사용했으며, 이 엔진은 최고출력 102마력과 최대토크 16.9kg.m, 최고속도 165km/h를 발휘했다. 변속기는 4단 수동이 맞물렸다.


1976년 현대자동차가 내놓은 포니의 성공과 1차 석유파동 이후 정부 주도 에너지 절약 기조로 인해 국내 자동차 시장이 소형차 중심으로 전환되었다. 정부는 석유파동 전인 1974년부터 에너지 절감 정책으로 연료 소비가 높은 고급 차량을 생산금지 조치한 상태였다. 따라서 고급차 시장이 사라지게 되고 제조사는 한동안 고급차를 생산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급 자동차의 수요는 존재했고 제조사는 대당 수익성이 높은 고급 자동차 시장을 외면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현대자동차는 당시 가격 경쟁력을 위해 원가에 비해 반값으로 포니를 해외시장에 수출하게 되면서 적자의 폭이 커지게 된다. 때문에 현대차는 정부에 대형 고급차의 생산 허가를 요청하게 된다.


결국 상공부는 준대형 고급차의 생산을 허락하게 되었다. 단 배기량 3리터 이하, 국산화율 20퍼센트 이상이라는 조건을 붙였다. 그리하여 현대차는 독일 포드의 그라나다의 2세대를 들여와 조립 생산하기로 결정한다.


독일에서 판매되었던 포드 그라나다는 4기통 1.7리터, 6기통 2리터, 6기통 2.8리터의 세 가지 라인업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현대차는 그중 6기통 2리터 모델을 들여와 현대 그라나다로 탈바꿈시켰다.




1978년 10월에 조립생산하여 같은 해 12월에 시판에 들어갔다. 시판 전 현대차 측에서는 1,395만 원의 가격으로 결정했지만 상공부에서는 241만 원을 깎아낸 가격인 1,154만 원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라나다의 가격은 매해 100만 원단위로 치솟게 된다. 이유는 23%에 불과한 국산화율과 관세, 특별소비세, 부가가치세 등의 세금을 붙였기 때문이다.



아파트보다 비싼 자동차 그라나다

2차 석유파동 이후에는 2리터 4기통 모델을 추가했고, 새롭게 디자인을 꾸며 뉴 그라나다를 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격은 더 치솟았고, 단종 직전이던 1985년 그라나다의 가격은 1,992만 원에 달했다. 당시 1979년 분양을 시작한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31평형 분양가는 1,800만 원 수준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아파트 한 채가 굴러다녔던 것이다.


출시 당시 대형 차의 공급 부재와 부유층의 욕구가 중첩되어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1979년 특별소비세 인상 때문에 출시된 직후 수많은 구매 희망자들이 몰려드는 기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현대차는 각 부처 장관 등 관공서와 사회 유명인사들에게 우선적으로 차를 배정하기 시작했다. 또한 그라나다의 판매를 늘리기 위해 수출을 강행하면서 국내 시장에서는 출고 지연이 심해지는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했다. 

 

1978년 등장한 이 차량은 1986년 현대자동차 고급 라인의 대표가 된 그랜저의 등장 전까지 8년간 생산, 판매되었다. 현재 국내에는 겨우 5대 정도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라나다에 대한 여담

그라나다는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장남인 정몽필 당시 인천제철 회장이 타던 차였는데 1982년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울산에서 서울로 향하던 그는 김천시에서 12톤 트레일러를 추월하려고 하다 옆구리를 들이받아 8미터 정도 끌려가면서 엔진에서 화재가 발생해 운전기사와 정몽필 회장 모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다.


2011년 12월에 MBC 예능 무한도전에서 멤버 길이 과거 부유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아버지께서 6기통 그라나다를 소유했다고 자랑했다. 이에 MC였던 유재석이 “그라나다는 당시 친구들이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소문만 무성했던 최고의 차”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부품을 수입하여 국내에서 조립 생산한 모델인 관계로 현대 로고 대신 포드 로고가 붙어 출고되었다. 

 

또한 1980년대 초중반을 풍미하던 부의 상징인 모델이기 때문에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중반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에서 정치인 및 재벌들의 자가용으로 자주 등장하는 차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