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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막힐수록 연비가 증가하는, 혼다 어코드 하이브리드 시승기

연비 테스트를 위해 막히는 퇴근길에 서울 도심에 진입했으나, 정말 말도 안 되게 막혀 도로 위에서 멈춰 선 상태로 1시간 이상을 허비해야 했다. 그냥 차를 버리고 걸어가도 더 빠를 것 같았던 극심한 정체 상황. 그런데 어코드 하이브리드의 실내는 마치 바깥세상과 분리된 듯 고요했고, 트립 모니터에 표시되는 평균 연비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었다.



볼보 XC90 T8 엑설런스에 이어서 며칠 만에 또 하이브리드 차량을 시승했다. 이번에는 혼다 어코드 하이브리드다. 최근 출시되는 하이브리드 차량들이 그러하듯이 이 모델도 하이브리드라고 해서 특별히 디자인을 다르게 하지 않았다. 어코드 하이브리드는 대부분 가솔린 모델과 동일한 디자인을 유지하면서 연비를 위한 디자인 변화만 갖는 게 전부다. 하이브리드 레터링은 A 필러 하단과 후미에 부착되며, 17인치 휠은 연비에 유리한 스타일로 바뀌었다. 또 트렁크 끝자락에는 아주 얇은 스포일러가 부착돼 조금 더 스포티하게 보이면서도 공기역학적으로도 유리한 역할을 한다. 




실내에서도 가솔린 모델과 거의 차이를 찾아보기는 어려울 정도로 동일하다. 오랜만에 시승했지만 여전히 실내 구성이나 디자인은 깔끔하고 담백하다. 특히 센터페시아에 두 개로 분리된 디스플레이는 너무 편리하고, 만족스럽다. 뒷좌석도 매우 넉넉해서 국내 중장년층 소비자들에게도 반응이 아주 좋다. 아쉬운 부분이라면 앞좌석에도 통풍시트가 없고, 뒷좌석은 윈도우 버튼이 오토가 아니라는 것 정도. 




트렁크에는 현대 쏘나타 하이브리드와 달리 배터리가 뒷좌석 뒤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뒷좌석을 접어서 활용할 수가 없다. 대신 스페어타이어가 탑재됐던 트렁크 하부도 수납공간으로 바꿔 세차용품이나 비상금 등을 보관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마련해뒀다.



개인적으로 시승을 할 때 다른 시승기는 참고하지 않는 편이다. 시승기는 워낙 주관적인 영역이어서 운전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게 당연한데, 다른 시승기를 읽고 은연중에 영향을 받고 싶지 않아서다. 하지만 어코드 하이브리드의 우수한 연비는 이미 소문이 날대로 난 상태여서 너무 궁금한 나머지 연비 테스트부터 시작했다.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시승은 오후 5시쯤부터 시작됐다. 양재동에서 과천, 사당을 지나 일산으로 향하는 구간인데, 정말 막혀도 너무 막힌다. 그냥 꽉 막혀서 평균속도가 10km를 간신히 넘는다. 이 상태로 1시간 이상 도심에 갇혀 있었는데, 연비가 리터당 15km를 넘어선 상태로 유지되고 있다. 일반적인 가솔린 준대형 세단이었으면 이미 리터당 7km 이하로 떨어졌을 텐데, 말도 안 되고, 보고도 믿기지 않을 연비다.



EV 모드로 주행이 가능해서 속도를 너무 높이지 않거나 가속페달을 깊게 밟지 않으면, 엔진음은 들려오지 않는다. 마치 전기차처럼 스르륵 미끄러지며 앞으로 이동하는데, 이 느낌 뭔가 오묘하게 매력적이다. 브레이크를 밟으면 다시 모터도 작동 중지. 하지만 브레이크는 오토홀드를 지원하지 않아서 정체구간에서 계속 밟고 있어야 하는 불편함이 느껴졌다. 시대를 따지지 않아도 도심 주행에 최적화된 하이브리드 세단에 오토홀드가 없다니 아쉬울 따름이다. 



정체가 풀리기 시작하면서 가속페달을 깊이 밟아봤다. 하지만 시스템 최고출력인 215마력과 17.8kg.m의 최대토크가 온전히 느껴지지 않는다. 엔진출력이 145마력인데, 오히려 체감상으로는 엔진출력 정도만 느껴지는 듯하다. 가속성능은 빠르지 않고, 오랫동안 탔던 아반떼와 비슷해서 약간 답답하다. 그래서 스포츠 모드로 전환했더니 모터와 엔진이 활발하게 작동되며 반응이 더 즉각적이고 시원하게 바뀐다. 가솔린 모델과 비교해서도 오히려 낫다는 느낌이 들 정도. 고속 영역으로 진입하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추월 가속이나 순간 가속은 모터의 토크까지 더해지니 움직임이 경쾌하면서 깔끔하다. 


하이브리드 모델들은 방음에 특히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풍절음과 노면 소음이 더 크게 들려와서 고요한 실내 분위기를 깨는 것은 당연하고, 승객들에게도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자유로와 강변북로를 달릴 때도 어코드 하이브리드는 하체 방음이나 풍절음 차단이 상당히 잘 되어 소음에 대한 부분에서 만족감이 높았다. 



기본적인 주행성능은 가솔린 모델과 동등하다. 핸들링은 특별히 묵직하지는 않지만, 정확하다. 서스펜션도 단단하지는 않지만, 쉽게 흐트러지지는 않는다. 아주 밸런스가 좋은 세팅이어서 국산 준대형 세단과 비교해도 여전히 우위에 있음이 확실하다. 하이브리드 차량들은 제동 페달을 밟을 때 이질감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어코드 하이브리드는 그 이질감이 거의 없고, 일반적인 차량처럼 깔끔하고 정확하다. 물론 가속 페달도 마찬가지. 



주행성능은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웠으나, 주행과 주차를 돕는 일부 편의사양은 다소 아쉬웠다. 레인 와치 시스템은 혼다의 대표적인 자랑거리인데, 주간에는 화질이 괜찮지만, 야간에는 화질이 너무 떨어진다. 후방 카메라도 화질이 수준 이하여서 마치 10년 전 차량의 화면을 보고 있는 것만 같다. 기껏 잘 만들어놓은 사양을 화질로 모두 망쳐버리는 것만 같아서 유튜브처럼 화면 아래 HD 버튼이 있다면 눌러서 화질을 좋게 바꾸고 싶었다. 



정체구간도 달리고, 고속 주행도 하면서 연비를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주행한 결과 평균 연비는 리터당 13.2km를 기록했다. 연비를 더 높여 주행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지만, 그런 주행은 의미가 없기 때문에 특별히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약 100km의 구간을 정말 연비 신경 쓰지 않고, 도로 상황에 혹은 기분에 따라 마음껏 달렸다. 덕분에 연비가 다소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마음껏 달린 것치고는 연비가 아주 만족스러웠다. 하이브리드는 연비가 좋아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을 충족한 셈. 이제 차를 반납해야 하는데, 연료 게이지는 여전히 한 칸도 닳지 않았고, 주행 가능 거리는 여전히 830km를 표시하고 있었다.

차량가격은 4,320만 원으로 국산 준대형 하이브리드보다 살짝 비싸다. 하지만 주행성능과 하이브리드 기술에 있어서는 어코드 하이브리드가 훨씬 앞서 있기 때문에 비교가 되지 않으며, 거주성이나 편의사양도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웠다. 특히 편의사양은 필요한 것만 갖추고 있어 오히려 조작하기 편리하며, 깔끔하게 느껴졌다. 또 차량가격이 약간 더 비싸더라도 하이브리드 차량의 각종 혜택을 포함해 10년 간 유지한다고 가정했을 때도 잔고장이 적고, 효율성도 높아 유지비 면에서 훨씬 더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